심야서재
내가 나를 본다.
책상 위에 놓인 손.
굳은 살이 단단하게 박힌 검지.
벗겨진 연필심.
나를 보며 웃는 ‘내 얼굴’.
하지만 그 얼굴,
내가 아니었다.
누구나 나를 ‘이상한 애’라 불렀다.
처음엔 아니었다.
정말 아니었다.
내가 먼저 웃었다.
인사했고, 노트도 빌려줬고, 숙제도 보여줬다.
근데—
“왜 그렇게 눈을 내리깔고 다녀?”
“야, 얘 또 혼잣말한다.”
“기분 나쁘게 왜 웃어?”
나는 그냥,
그냥 있었던 것뿐이었다.
어느 날,
복도에서 우연히 최윤재와 마주쳤다.
그는 나를 부르지도 않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다는 것은 느껴졌다.
그날 옥상에서,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는 말렸다.
내가 아니었다.
그도,
나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루 전.
나는 쪽지를 한 장 책상 서랍에 넣었다.
받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쓰지 않으면 터질 것 같아서.
“나는 모든 걸 봤어요.
근데, 아무도 안 봐줬어요.
이 교실에선 ‘조용한 사람’이
가장 무서운 존재가 되는 것 같아요.”
그 말은
누구에게 닿지 않았다.
마지막 날 밤.
나는 윤재에게 문자를 보냈다.
“너 그날… 기억나지?”
그는 읽었고,
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 답장이
곧 ‘말하지 말라’는 메시지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옥상에 올랐을 때,
나는 하늘을 봤다.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하늘.
세상이 이렇게 고요한데,
왜 나는 이렇게 시끄러울까.
발을 내딛으려 할 때,
문득 정이서의 노트가 떠올랐다.
그 아이는 늘
내 자리 옆에서 필기를 해줬다.
말은 없었지만,
노트에 체크해둔 날짜들.
빨간색으로 동그라미 친 날들.
그건—
내가 울지 않은 날이었다.
그걸 기억하고 있었던
유일한 사람.
내가 나를 본다.
지금도 나는 교실 뒤편 창가에 앉아
모두의 뒷모습을 본다.
누구는 웃고,
누구는 잊고,
누구는 내 자리를 피하고.
나는 이제—
무엇도 묻지 않는다.
왜냐면,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을 테니까.
작가의 말 :
7화는 드디어 고윤태의 시점으로 전환됩니다.
독자에게도 윤태는 늘 관찰 대상이었지만,
이번 화를 통해 우리는
그가 얼마나 철저히 외면 당해 왔는지를 들여다보게 됩니다.
윤태는 ‘이상한 아이’가 아니라,
‘이상하게 보인 아이’였습니다.
그는 침묵을 택한 것이 아니라—
누구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기에
결국 말하는 걸 멈춘 것입니다.
심리학적으로 윤태는
자기소외(self-alienation)와
사회적 고립(social isolation) 상태를 지속적으로 겪었으며,
이는 일종의 심리적 실종(psychological disappearance) 상태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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