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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가 사라진 자리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처음 며칠은 그랬다.

교실의 분위기는 애매한 공기로 가득했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고,

누구도 그 자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 자리는,

마치 살아 있는 듯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무 말 없이

김도현이 앉았다.

도현은 원래 말이 많았다.

장난도 심했고,

가끔은 선을 넘는 농담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 그가

윤태가 사라진 다음 날부터

조용해졌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그가 마지막까지

윤태를 밀어붙였다는 걸.


“김도현 학생, 잠깐 괜찮을까요?”


내 말에 도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또 윤태 얘기인가요?”

“아니요.

그 자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비워두는 게 더 불편해서요.”

“어떤 점이 불편한가요?”

“다들 그 자리를 못 쳐다보잖아요.

근데, 나는 그게 더…

자꾸 그날 생각나게 만들더라고요.”

“그래서, 앉기로 한 건가요?”

“…네.

누군가는 앉아야 하니까.

아무도 앉지 않으면,

계속 ‘그 자리는 윤태 자리’가 되니까.”


도현은 눈을 내리깔고 손을 꼼지락거렸다.

책상 모서리를 손톱으로 긁으며 중얼댔다.


“근데요, 선생님…

윤태가 죽기 전날,

나한테 문자 보냈거든요.”


그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딱 하나였어요.

‘내일 나랑 얘기 좀 하자.’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답장을 했나요?”

“…못 했어요.

그땐 그냥

뭘 또 시비 걸려나보다 싶었거든요.”


도현은 조용히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입꼬리만 올라간

무너진 표정이었다.


“내가 그때,

그냥 ‘그래, 보자’

그 한 마디만 했어도…”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자리에 앉는 이유는…

벌 받는 거예요.

매일 그 자리에 앉아서

그날을 생각해요.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니까.”


나는 말했다.


“김도현 학생,

그건 벌이 아니라

기억입니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은

진짜로 사라지는 게 아니잖아요.”




작가의 말 :

8화는 윤태의 ‘빈 자리’에 매일 앉는 김도현의 이야기입니다.

도현은 일종의 죄책감 방어기제로 인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합니다.

그것은 회피가 아닌, 의도된 대면입니다.


심리학적으로 이는

‘보상 행동(compensatory behavior)’과

‘대리 속죄(surrogate atonement)’의 양상을 보이며,

그는 자신의 무력감과 후회를

행동으로라도 기록하려 합니다.


우리는 종종

무언가를 잊기 위해 애쓰지만,

김도현은 잊지 않기 위해 고통을 택한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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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5-28 08: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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