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교사의 외침, 이제는 응답할 때” - 반복되는 교권 침해와 교육 현장의 고통
  • 기사등록 2025-05-28 14:15:28
기사수정

 "선생님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제주=연합뉴스) 지난 24일 제주도교육청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학생 가족의 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제주 모 중학교 교사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2025년 5월, 제주도의 한 중학교에서 40대 담임교사 A씨가 학교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A씨는 학생의 무단결석과 흡연 문제를 지도하는 과정에서 해당 학생의 가족으로부터 지속적인 항의와 민원에 시달렸다. 유족에 따르면, A씨는 하루에 12통에 달하는 민원 전화를 받았으며, 결국 "학생 가족과의 갈등으로 힘들었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 사건은 2023년 서울 서이초등학교에서 발생한 교사 사망 사건과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서이초의 신임 교사는 학부모의 강한 항의와 압박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으며, 당시에도 교권 보호의 부재와 교사의 정신적 고통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교사의 고통, 사회의 책임


교사들은 교육의 중심에 있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고립된 존재가 되기도 한다. '아이를 사랑해야 한다', '참아야 한다', '감정을 드러내선 안 된다'는 사회적 기대는 교사로 하여금 고통을 말하지 못하게 만든다. 많은 교사들은 학생에게는 웃음을, 학부모에게는 설명을, 동료에게는 침착함을 유지한 채, 속으로 감정을 억누른다. 여기서 문제는 이 억눌림이 쌓이고 쌓여 결국은 자기소진(burnout)이라는 이름의 무기력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어느 순간부터 교사들은 "더는 말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체념 속에 머물게 되고, 내부에 상처를 안고 버티는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학부모와의 갈등, 시스템의 부재


한편 학부모들 역시 아이를 지키기 위해 행동한다. 자녀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느낄 때, 누구라도 나서서 항의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항의'가 '공격'으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부모의 분노는 교사를 향한 불신으로, 때로는 맹목적인 비난으로 바뀌고 만다.


한국 사회는 '내 아이를 위한 것이라면 뭐든 해야 한다'는 정서가 강하다. 하지만 이런 정서가 교사의 자율성과 교육적 판단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결국 아이 역시 건강한 교육 환경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과잉 보호가 결국 아이의 미래를 해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제도적 대응의 한계


서이초 사건 이후, 교육부는 교권 보호를 위한 다양한 대책을 마련했다. 각 학교는 학교장 책임하에 '민원 대응팀'을 구성하고, 교직원 개개인이 아닌 기관이 대응하도록 했다. 또한 교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교원 안심번호 서비스'를 도입하고, 학교 전화기를 녹음되는 전화기로 교체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대응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제주 사건에서도 A씨는 개인 휴대전화로 학생 보호자의 민원 전화를 수차례 받아왔으며, 학교의 민원 대응팀은 유명무실했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민원 응대 시스템이 잘 운영되고 있다"고 답한 교사는 14%에 불과했다. 


교권 침해, 반복되는 비극


교권 침해는 교사의 직무 만족도 저하, 학생에 대한 소극적인 생활지도, 학생의 학습권 침해 등 다양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상황은 우수 인재의 교직 기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실제로 18-29세 응답자의 56%가 교사의 사회적 지위가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교권보호심의위원회는 교권을 침해한 보호자에 대해 서면사과 및 재발방지 서약, 특별교육 이수 또는 심리치료, 과태료 부과 등의 조치를 권고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년 간 교보위가 심의한 학부모 교권침해 사안 814건 중 과태료를 부과한 사례는 0건이었다. 서면 사과는 227건(27.9%), 특별 교육은 171건(21.0%)이었고, 조치 없음으로 종결된 사안도 212건(26.0%)이었다. 


교사의 외침에 응답할 때


한 명의 교사가 죽을 때, 우리는 모두 실패한 것이다. '왜 말하지 않았느냐'고 묻기 전에, '왜 들어주지 않았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왜 보호하지 못했는가'의 질문 앞에서, 더는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교사는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아이들의 하루를 함께 살아가는 어른이고, 공동체의 가치를 전하는 사람이다. 이들이 더는 고통 속에서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이제는 우리 사회가 함께 나서야 할 때이다.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psytimes.co.kr/news/view.php?idx=10362
  • 기사등록 2025-05-28 14:15:28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