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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최지현]


 


“나도 그 게임 한번 해볼래.”


보드게임 '루미큐브'를 처음 접해보는 친구를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익혀온 게임의 규칙을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루미큐브는 운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게임이긴 하지만, 그동안 수많은 경우의 수를 겪으며 터득해야하는 실전감각도 역시 중요하다. 한쪽의 승리가 기정사실처럼 보이던 상황에서, “이렇게 하는 거 맞아?” 라는 말과 무섭게 친구는 자신의 패를 비워가기 시작했다. 상대방은 규칙상 낼 수 있는 조합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게임의 승부는 초보자의 승리로 결정지어졌다. 

 


과연 초심자의 행운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게임은 대체로 주어진 규칙 속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다양한 전략적 선택지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운이 개입되더라도,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경험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반복 학습하고,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며 적절하게 대응하는 능력은 숙련자만의 고유 영역이다. 그래서 경험과 전략이 축적될수록 승률이 높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특히 운의 요소가 큰 게임에서는 물론이고, 일정 수준의 전략이 요구되는 게임에서도 초심자가 숙련자를 이기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운’ 이상의 구조로 분석한다. 우선, 숙련자는 초보자를 과소평가하며 처음부터 느슨하게 대응하거나, 예상치 못한 밀림에 쉽게 당황하여 전략적으로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초보자는 실수를 하거나 져도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에, 자신에게 기대가 없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숙련자는 이겨야 하는 압박감을 느끼며 선택에 대해 오히려 부담을 느끼고 위축될 수 있다. 


 

우리 안에 있는 두 가지 시스템


행동경제학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의 사고 과정을 두 가지 시스템으로 설명한 바가 있다. 이른바 ‘두 시스템 이론’ 또는 ‘이중 과정 이론’이다. 빠르고 자동적이며 통제가 힘든 직관적 사고를 담당하는 시스템 1, 복잡한 계산을 비롯해 노력이 필요한 논리적, 분석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시스템 2로 나뉘며, 우리는 상황에 따라 이 두 가지 사고 방식을 넘나들며 판단을 내린다. 

 

시스템 1은 학습과 경험이 축적되기 전, 초보자들이 주로 사용한다. 판단의 근거는 직관과 감각, 그리고 즉각적인 반응이며, 자신의 선택이 실수로 이어질지, 유리하게 작용할지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눈 앞의 수에 집중한다. 반면 시스템 2는 학습과 훈련을 통해 점차 강화되는 분석적 사고 방식으로, 전략을 짜고 확률을 계산하며 장기적인 결과를 고려한다. 숙련자의 사고는 이 시스템에 의지한다.

 

하지만 바로 이 차이가 ‘초심자의 행운’을 가능하게 만드는 심리적 기반이 된다. 초심자는 복잡한 판단을 하지 않고도 단순한 규칙만으로 움직이고, 이런 단순함이 오히려 예상 밖의 상황에서 유연하게 작동하며 기존의 전략적 계산을 무력화하는 수를 던지기도 한다. 반면, 숙련자의 시스템 2는 모든 가능성을 따져가며 판단을 내리려다 오히려 복잡한 상황에 갇혀 실수를 저지르거나,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도 발생한다. 즉, 지나치게 분석적인 사고는 오히려 단순한 선택보다 비효율적일 수도 있다는 역설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처럼 두 시스템은 각기 장점과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초심자의 행운‘은 단순한 ‘운’이라기보다는 사고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초심자의 행운과 현실 사이


‘초심자의 행운’은 게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상 속 다양한 분야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종종 나타난다. 예를 들어, 창의적인 작업이나 예술 활동에서는 신선한 시도와 새로운 관점이 예상 밖의 성과로 이어질 수 있고, 주식 투자나 스타트업 창업 같은 영역에서도 운 좋게 초기 수익을 거두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초심자의 행운’은 통계적으로 보았을 때 매우 희박한 예외 상황이다. 오히려 그 희귀성 때문에 더욱 인상 깊게 기억되고, 우리는 그것을 일반적인 현상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문제는, 이런 예외적인 경험을 자신의 실력으로 착각하는 순간부터다. 이때부터 무모한 자신감이 생기고,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진다. 초심자의 행운은 분명 흥미롭고 매력적인 경험일 수 있지만, 그것을 지나치게 믿거나 반복 가능한 전략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운에 의존하는 결정은 당장의 성공을 주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보았을 때 결국 실패로 귀결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참고문헌

1)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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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6-19 08: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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