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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고윤태가 남긴 그림 봤어?”


그 말은 쉬는 시간,

누군가의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

말을 꺼낸 건 체육부장 이승훈이었다.


“얼굴 없는 그림 말이지?

그거 무섭더라.”


아이들은 키득이며 수군댔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그림은,

내가 유일하게 본 사람이니까.


방과 후.


나는 다시 교실로 돌아갔다.

가방에 고이 접어 넣은 윤태의 스케치북을 꺼냈다.

책상에 펼쳐본다.

지워진 얼굴.

그림 아래,

다시 보이지 않았던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숫자…?’


그림 아래 조그맣게,


‘3-7-4-2’


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뭔가 이상하리만큼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도서관에 남았다.

윤태의 스케치북,

그리고 지난 교내 문집들 속에서

그의 이름이 나왔던 페이지를 찾았다.

201X년 2학년 4반.


그 해,

교내 폭력 사건으로 전학을 간 학생이 있었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기록에는 없었다.

다만,

문집 한쪽 모서리에 적힌 이름 하나.


‘윤태에게 미안해.’


라는 연필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밑에 서툰 필체로 덧대어진 말.


‘그래도 난 말 못 해.

너무 무서워서.’


그때,

도서관 불이 깜빡였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운동장 한가운데,

누군가 서 있었다.


교복.

긴 그림자.

그리고 들고 있는—

스케치북.


“그림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윤태가 남긴 스케치북 속 ‘지워진 얼굴들’은—

사라진 인물들이 아니라,

그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싶었던 얼굴들'이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아직 얼굴이 남은 단 한 명.

그 이름은,


이승훈.




작가의 말 :

10화는 이 시리즈의 전환점입니다.

지금까지는 ‘죽은 아이’ 고윤태의 존재가 이야기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부턴 살아 있는 자들의 침묵이 드러나는 구조로 넘어갑니다.

윤태는 그림을 통해 복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 그대로,

누가 자신을 지우고 있었는지 보여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침묵의 교실’이라는 이름처럼

누구도 입을 열지 않고,

누구도 나서지 않았기에,

그는 얼굴이 지워지는 고통을 홀로 견뎌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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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5-30 08: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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