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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만 기억하는 거지.

분명 너희도 거기 있었잖아.”


그 문장을 읽고도, 정시아는 한동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피가 번진 것도, 잉크가 흐린 것도 아닌데.

그 문장은 이상하게도 ‘울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메모는 누군가를 향한 외침이었다.

무언가를 목격한 사람, 그걸 외면한 사람들을 향한 절규.

시아는 조심스레 메모를 접어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정시아.”


목소리는 등 뒤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조현빈이 교실 입구에 서 있었다.


“왜 네가 윤태 자리에서 뭐 하고 있냐?”

“…그냥, 청소 담당이니까.”


시아는 차분하게 대답했지만, 눈을 피하지 않았다.

조현빈은 다가오지도, 멀어지지도 않은 거리에서 그녀를 노려봤다.

그의 눈빛엔 분노도, 슬픔도 없었다. 오히려 비웃음에 가까운 무표정.


“다들 똑같은 소리해. 그냥 지나가다가, 우연히, 관심 없었다고.”


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근데 있잖아, 정시아.”


조현빈은 책상에 턱을 괴고 몸을 기울였다.


“진짜로 아무것도 몰라? 네가 궁금해하는 그날, 사실 너도 거기 있었던 거 아니야?”


심장이 뛴다.

시아는 순간 말을 잃었다. 조현빈의 말은 장난처럼 들리지 않았다.


“무슨 뜻이야.”

“모른 척하지 마. 네 눈빛, 처음 전학 왔을 때부터 이상했거든. 마치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처럼.”


그 말에 시아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녀가 윤태의 죽음을 파헤치는 이유는 단순한 ‘심리 관찰자’로서의 임무가 아니었다.

그 아이의 마지막 표정을, 시아는… 어쩌면 이미 본 적이 있었다.


점심시간, 시아는 조심스럽게 식판을 들고 조현빈 쪽으로 향했다.

그는 혼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자리에 앉아도 돼?”


조현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 사이엔 묘한 정적이 흘렀다.

시아는 먼저 말을 꺼냈다.


“윤태랑… 마지막으로 무슨 얘기 했어?”


조현빈은 웃었다. 입꼬리는 올라갔지만, 눈은 차가웠다.


“내가 기억해야 할 말은 없었어. 대신, 내가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장면은 있지.”

“…어떤 장면?”


그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시선을 테이블 아래로 내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5시 12분. 4층 음악실 뒷문. 네가 먼저 와 있었지.”


시아는 숨을 들이켰다.


그 시간, 그 장소…

그건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 그녀만이 알고 있는 위치였다.




작가의 말 :

이번 화는 조현빈이라는 캐릭터의 핵심이 처음으로 드러나는 시작점입니다. 그는 단순한 문제아가 아닌, 가장 많은 것을 보고도 침묵한 인물일 수 있어요. 그리고… 정시아 역시 완전히 무고하지 않다는 암시가 본격적으로 등장했죠. 다음 화부터는 진실의 조각이 서로 어긋나는 구조로 전개됩니다.

계속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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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6-05 09:2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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