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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살적 자해 청소년의 신호 - 몸짓으로 드러나는 정서적 고통과 상담적 접근
  • 기사등록 2025-06-23 08:2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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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정연수]



상처로 말하는 청소년들, 그들의 몸짓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여성가족부 제공 

청소년(9∼24세) 인구 10만 명당 자살(고의적 자해) 발생률이 11.7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다시 기록하였다. 청소년 사망 원인 중 자살은 2011년 이후 13년 연속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5월 27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과 공동으로 『2025 청소년 통계』를 발표하였다. 본 통계는 2002년부터 매년 발간되며, 사회조사 및 경제활동인구조사 등 각종 국가 승인 통계 자료에서 청소년 관련 항목을 추출, 재분류 및 가공하여 작성된 것이다.


2023년 청소년 사망자는 총 1,867명으로, 전년 대비 34명 감소한 수치이다(2022년 1,901명). 성별로는 남성이 59.9%(1,118명), 여성이 40.1%(749명)로 남성 사망자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 원인별로는 자살이 1위이며, 이어 안전사고와 암 순으로 집계되었다.


청소년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021년 11.7명에서 2022년 10.8명으로 다소 감소했으나, 2023년 다시 11.7명으로 상승하였다. 2010년에는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안전사고였으나, 2011년 이후 자살이 지속적으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청소년기는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탐색하는 시기로, 신체적·정신적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며 또래 집단의 영향력이 증대한다. 이 과정에서 외모에 대한 비교와 평가가 자존감에 큰 영향을 미치며, 청소년들은 자신의 감정과 존재를 외적으로 표현하려는 욕구가 강해져 외모지향성이 심화되기도 한다.


박선태 · 임성옥(2017)의 연구에 따르면, 외모에 집착하는 청소년은 자아존중감이 높은 경향을 보이지만 동시에 문제행동이 증가하는 이중적인 양상을 보인다. 이는 외모를 통한 자존감 회복이 진정한 내면의 회복을 대체하지 못하며, 오히려 불안을 감추기 위한 방어기제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와 같은 왜곡된 자기 인식과 정서적 어려움이 극단적으로 표출될 경우, 청소년들은 ‘비자살적 자해(Non-suicidal Self-Injury, NSSI)’를 선택할 수 있다. 자해는 자살 의도가 없더라도 신체를 의도적으로 손상시키는 행위로서, 강렬한 감정을 해소하거나 감정의 무감각 상태에서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한 방법이다. 최근 SNS, 유튜브,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자해가 일종의 유행처럼 확산되면서, 자해를 단순히 ‘주목받기 위한 행동’으로 폄하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자해하는 청소년들을 바라볼 때는 ‘문제아’라는 낙인 대신, 상처받은 감정의 언어로서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자해는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 현재의 괴로움을 견디기 위한 무언의 외침일 수 있다. 청소년 자해는 단순한 반항이나 관심 끌기 행동이 아니라, 이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감정 조절 방식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비난이나 단속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이들의 고통을 알아차리고 공감하는 어른의 따뜻한 시선 지원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 청소년에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상담자로서 청소년 자해 문제를 접할 때마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이 아이가 자해를 말이 아닌 몸으로 표현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이다. 실제 상담 경험에서도, 자해 청소년들은 언어적 표현이 익숙하지 않거나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온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너는 충분히 괜찮아”라는 말을 듣지 못했거나, 들었지만 믿지 못했을 수 있다. 그래서 스스로를 벌주거나 고통을 전이시켜 겨우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청소년에게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과 ‘관계’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너는 왜 자해했니?”라고 묻기보다 “요즘 마음이 어땠니?”, “그때 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와 같은 질문이 먼저일 수 있다. 자해를 멈추게 하는 상담보다, 자해를 대신할 감정 표현 방식을 알려주는 것이 우선이다.


상담실을 넘어, 가정과 학교, 지역 사회도 청소년의 고통을 ‘처벌’이 아닌 ‘돌봄’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 부모와 교사는 자해 행동에만 주목하지 말고, 그 행동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질문하고 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한 상담자는 “부모가 바뀌면 아이가 훨씬 빨리 변화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자해 청소년을 돕는 데에는 상담자뿐 아니라, 주변의 어른 모두가 회복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상담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에서 시작된다.



「비자살적 자해 청소년 상담에서의 상담자 개입 경험에 관한 질적 연구」(오윤서·장유진, 2021)에 따르면, 

자해 청소년 상담에서 가장 효과적인 개입은 상담자의 ‘신뢰’와 ‘관계 맺기’였다. 


상담자들은 먼저 내담자의 현재 기능과 자살 위험성을 평가하고, 자해의 동기를 함께 탐색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정서의 해석자’가 아닌 ‘정서의 동반자’가 되는 태도였다.


개인적으로 자해 청소년을 상담하며 가장 깊이 느낀 점은, 그들이 자해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는 고립감이 훨씬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자해를 하지 않으면 너무 답답해서, 터질 것 같아서 그랬어요.”라고 털어놓는다. 그 말 속에는 표현할 언어도 없고, 위로해 줄 사람도 없으며, 믿어도 괜찮은 어른 하나 없는 현실이 담겨 있다.


자해는 단순히 ‘아프고 싶다’는 행동이 아니라, ‘살기 위해 애쓰는’ 몸짓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이 아이들의 몸에 난 상처에만 주목할 뿐, 그 상처가 생겨난 마음의 결핍과 고통은 놓치고 만다. “자해하지 마.”, “다시는 그러지 마.”라는 말만으로는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왜 그랬을까?”, “얼마나 힘들었니?”, “그럴 때는 어떻게 해볼 수 있을까?”와 같이 이야기할 기회를 열어주는 언어와 태도이다.

자해를 무조건 멈추게 하기보다, 자해 외에도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과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방식, 연결될 수 있는 관계를 함께 모색해야 한다. 청소년 자해는 단순히 교정하거나 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살고 싶고 이해받고 싶고 연결되고 싶어 하는 간절한 신호가 담긴 ‘이야기’이다.


상담자는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자, 그 아이가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언어’를 함께 찾아가는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나아가 상담자뿐 아니라 교사, 부모, 지역 사회 모두가 그런 안내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안전계획을 세우고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안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손목에 고무줄을 차고 튕기거나, 즉각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을 미리 정해두는 등 실행 가능한 대처 행동을 마련하는 것이 내담자의 자해 행동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자신의 자해 행동을 객관화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감정과 욕구를 탐색하도록 돕는 상담자의 개입은 내담자의 자기 이해와 수용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담자가 내담자를 ‘믿어주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자해하는 너는 나에게 귀찮은 존재가 아니다. 힘들 때 내가 함께 있어줄 수 있다.”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내담자에게 전달될 때, 아이는 조금씩 변화하려는 의지를 갖게 된다. 정서적 고통을 말이 아닌 몸으로 드러낸 아이에게 진심으로 “네가 소중하다”고 말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될 때, 상담은 비로소 치유로 이어진다.


자해 대신할 수 있는 ‘다른 선택’이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그 아이 곁에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 손이 ‘처벌’이 아닌 ‘지지’로 다가갈 때, 청소년은 비로소 자신도 상처를 멈출 수 있는 존재임을 믿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이나 해답이 아니다. 더 많은 공감의 눈과 따뜻한 연결의 손, 그리고 멈추지 않는 진심이다. 청소년이 고통을 말이 아닌 몸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묵묵히 그 곁에 머무는 어른이어야 한다.



참고문헌 


1) 신수정,정은실,허미경,and 윤은주. "고위기(자살시도 및 자해)청소년 개인맞춤형 그뤠잇⁺ 프로그램의 효과." 청소년상담연구 28.1 (2020): 73-97. 

2) 오윤서,and 장유진. "비자살적 자해 청소년 상담에서의 상담자 개입 경험에 관한 질적 연구." 청소년상담연구 29.1 (2021): 175-204. 

3) 권경인,and 김지영. "청소년 비자살적 자해상담 경험에 대한 현상학 연구: 상담자의 어려움과 대처방안을 중심으로." 청소년상담연구 28.1 (2020): 269-291. 

4) 이제정,정승원,신철규,김현정,박선규,노인영,이종국,오근,and 서희영. "나일락(樂) 프로그램(아동청소년의 자해예방을 위한 초단기간 변증법적 행동치료 기술 훈련)의 나이, 성별, 자해 경험 여부, 프로그램 시행 방법에 따른 효과성 분석." 정신신체의학 32.2 (2024): 8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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