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예림
[한국심리학신문=고예림 ]
최근 인기 있는 유튜브 채널 ‘찰스엔터’는 ‘월간 데이트’라는 연애 리얼리티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 5월, 다섯 번째 데이트 상대로 찰스의 ‘최애’ 배우 장동윤이 출연했는데, 이 영상은 업로드 2주 만에 29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큰 반응을 얻었다.
지난 5월 업로드된 '월간데이트 5호' 속 찰스엔터와 장동윤의 모습/유튜브:찰스엔터
뒤이어 유튜버 짐미조 또한 오랜 시간 팬심을 드러내 온 손석구와의 데이트 콘텐츠를 공개하며 주목을 받았다. 연속으로 두 영상을 본 시청자들은 “팬과 스타의 데이트가 가능한 일이었냐”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세상 좋아졌네요~ AI 기술이 이렇게 자연스럽게”라는 유쾌한 반응도 이어졌다.
우리가 데이트 콘텐츠에 열광하는 이유
사람들이 데이트 콘텐츠에 열광한다는 사실은 조회수가 말해준다. 찰스엔터의 콘텐츠는 300만 회, 짐미조의 콘텐츠는 112만 회를 기록하며, 두 유튜버의 기존 영상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를 보여줬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많은 이들이 이 콘텐츠에 몰입하는 걸까?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대리만족’이라 설명한다. 사전에서는 대리만족을 “다른 사람의 성공이나, 원래의 목적과 다른 경로를 통해 얻는 만족”이라 정의한다. 그렇다. 시청자인 우리는 찰스엔터와 짐미조가 우리가 선망하던 배우들과 데이트를 했다는 사실이 성공이라고 여긴 것이다. 즉, 마치 ‘내 일처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다.
프랑스의 신경과학자 장 드세티는 “인간의 뇌는 타인의 감정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실제 감정을 경험할 때와 유사한 반응을 보인다”고 밝혔다. 누군가의 설렘에 함께 심장이 뛰고, 어색한 상황에 같이 긴장하게 되는 건 그 때문이다. 영상 속 누군가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우리는 간접적으로나마 함께 경험하며 감정적 만족을 얻는다. 영상을 보면서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고 내가 직접 데이트를 한 것이 아님에도 설레였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대사회 속 우리는 연애의 감정을 대리만족할 수 있는 콘텐츠를 소비한다.
대리만족의 끝판왕, 연애 프로그램
데이트 콘텐츠보다 훨씬 더 오래된 ‘감정의 외주처’는 따로 있다. 바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하트시그널>, <환승연애>, <나는 솔로> 등 다양한 연프(연애 프로그램)는 시청자 대신 사랑하고 다투고 화해하며, 감정의 진폭을 대신 겪어준다.
선풍적인 인기를 끈 나는솔로/SBS 나는솔로
30대 직장인 A씨는 이렇게 말한다. “바빠 죽겠는데 언제 연애하겠냐. 연프에 몰입해서 새로운 감정을 느끼는 게 진짜든 가짜든 중요하지 않다. 현실 연애는 너무 버겁다.” 기혼자 B씨는 아내와 함께 연프를 시청하며 “서로의 연애관을 대화로 확인하고, 함께 감정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연프는 단순한 콘텐츠 소비를 넘어, 감정의 대리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연애가 내 일은 아니지만, 마치 내 일처럼 느낄 수 있는 장치. 나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대신 경험한다는 점에서, 대리만족의 기능은 더욱 강력하다. 이제는 연프의 세계도 확장되고 있다. 성소수자, 종교인, 점술가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 출연하며 콘텐츠의 폭도 넓어지고 있다.
감정의 외주화: 감정의 간접 체험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감정 표현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과 맞닿아 있다. 콘텐츠를 통해 감정을 ‘간접 체험’하는 것이 보편화되면서, 우리는 점차 감정을 외주화하고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대리감정(vicarious emotion)’이라고도 설명한다. 타인의 감정을 관찰하며 마치 자신이 그 감정을 겪는 것처럼 반응하는 것이다.
디지털 세대인 Z세대는 이 흐름을 더욱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유미 중앙대 교수는 “Z세대는 디지털 매체에 익숙하다 보니, 직접 만나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매체를 통한 간접 경험에 의존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또한 “연애나 대면 관계에 쓰는 에너지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며, 감정 노동을 최소화하려는 사회 흐름이 이런 콘텐츠 소비에 영향을 준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감정의 외주화는 감정 표현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제공할 수 있지만, 동시에 개인의 감정 인식과 표현 능력의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감정의 주체로서 살아가기 위해
대리만족을 통한 감정의 간접 체험은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감정 표현 방식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러한 간접 체험에만 의존할 경우, 개인의 감정 인식과 표현 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감정의 외주화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직접 인식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물론 연애 프로그램을 보며 설레어 하고, 눈물 한 방울 흘려본 경험, 누구나 해봤을지 모른다. 감정을 빌려 느끼는 것도 감정이고, 그만큼 소중한 체험이다.
하지만 감정은 렌탈이 아니다. 그 감정에만 익숙해질 때, 우리는 점점 더 감정의 ‘관람자’로 남게 된다. 그래서 가끔은 ‘끄고’ 나와야 한다. 감정은 타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지만, 진정한 감정의 깊이와 의미는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표현할 때 더욱 풍부해진다. 프로그램이 아닌 현실에서, 누군가와 진짜 감정을 나눌 때, 우리는 비로소 감정의 주체로 살아갈 수 있다. 대리로 느끼는 것이 아닌, 주체로서 내 감정을 마주해보자.
*참고문헌
1) 김경화, 솔로, 돌싱, 끝사랑, 동성애…지드래곤도 중독됐다, 연애 프로 전성시대, 조선일보, 2024.12.03.,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4/11/30/R2HUJXPFIZB6VHQQDD6MNQ4WZI/?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
2) 김지원, 연애 리얼리티에 열광하는 2030…’감정 외주화’가 불러온 변화, 월요신문, 2023.08.24. https://www.wolyo.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1973
3) 이진민, 남들 연애 왜 보냐고요? ‘연프’ 과몰입하는 나의 속사정, 오마이스타, 2025.02.18., 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3102560&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4) 장유진, 제2의 차주영-꾸꾸 나올까?...팬 서비스도 ‘콘텐츠’가 되는 시대[엔터토크], 이투데이, 2025.05.27., https://www.etoday.co.kr/news/view/2474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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