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빈
[한국심리학신문=윤수빈 ]
Unsplash돈을 지불하고 본 영화가 필자의 취향과 안 맞아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었던 적이 있었다. 모처럼 기대를 품고 혼자 영화를 보러 나왔는데, 투자한 시간과 돈이 아까워서 꾹 참고 영화를 계속 봤다. 결국 필자는 영화를 보던 중간에 곯아 떨어졌고, 영화 마지막 부분이 상영되고 있을 즈음에 잠에서 깼다. 결국 영화관을 나왔을 땐 영화가 무슨 내용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고 시간과 돈을 모두 버렸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살면서 한번쯤은 필자와 비슷한 경험을 해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싸게 예매한 전시회가 기대에 못 미쳐도 끝까지 돌아보고, 배가 부른데도 음식값이 아까워 억지로 먹거나, 흥미를 잃었음에도 지금까지 투자한 시간과 돈이 아까워 전공을 바꾸지 못하는 상황들 말이다.
이미 시간이나 돈을 들였다는 이유로, 남은 시간과 돈을 억지로 쏟아붓는 일. 심리학에서는 과거의 투자가 아까워 지금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결정을 바꾸지 못하는 것을 ‘매몰 비용의 오류’라고 부른다.
매몰 비용의 오류 사례
매몰 비용의 오류는 본래 경제학에서 나온 용어로, 이미 지출되어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아까워한 나머지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즉, 실패가 예상되거나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투자에 끌려 계속해서 시간과 돈, 노력을 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오류를 일상 생활에서 많이 범하곤 한다. 예를 들어, 관람료를 냈다는 이유로 재미없는 영화를 끝까지 보거나, 이미 결제한 전시회가 실망스러워도 억지로 다 보고 나오는 행동들이 그 예다. 이런 선택들은 당장의 손해는 막아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남은 시간과 에너지까지도 허비하게 만든다.
이러한 심리는 개인 차원을 넘어 조직이나 국가에도 영향을 끼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960~70년대 프랑스와 영국이 공동 추진한 ‘콩코드 여객기’ 개발이다. 이 프로젝트는 경제성이 없다는 전문가의 경고가 이어졌음에도, 이미 투입된 막대한 자금을 고려해 사업을 중단하지 못했고, 결국 큰 손실을 남긴 채 폐기되었다. 이는 과거의 선택을 놓지 못한 결과가 미래의 더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매몰 비용이라는 것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자원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지금까지 들인 노력’이나 ‘지출한 비용’을 이유로 잘못된 관계를 계속 유지하거나, 실패가 뻔한 계획을 포기하지 못하는 선택을 반복한다. 이는 결국 본질적인 질문, “이 선택이 지금의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를 놓치게 만든다.
매몰 비용의 오류를 범하지 않는 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매몰비용의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있을까?
첫째, 지금 이 선택을 처음부터 다시 한다면 과연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은 감정이 아닌 이성에 기반해 현재 상황을 재평가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재미없는 영화를 보고 있을 때 “지금 이 영화를 처음 발견했다고 해도 1시간을 더 쓸 것인가?”라고 자문해보자. 대답이 “아니오”라면,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것이 오히려 더 이득일 수 있다.
둘째, 타인의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도도 유용하다. 친구가 내 상황이라면, 나는 어떤 조언을 해줄까? 이렇게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훨씬 더 냉정하고 현명한 판단이 가능하다. 우리가 자신의 일에는 감정적으로 얽히기 쉬운 반면, 타인의 일에는 이성적으로 접근하기 쉽기 때문이다.
셋째, 과거의 나보다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를 우선시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미 흘러간 시간이나 쓴 돈은 되돌릴 수 없지만, 지금부터는 새로 선택할 수 있으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방향이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만두는 용기’가 필요하다
매몰 비용의 오류는 일상 속에서 굉장히 빈번하게 느낄 수 있는 현상이다. 이 글을 읽고 나중에 지금 내가 하는 선택이 매몰 비용의 오류를 범하는 것임을 깨닫더라도, 막상 포기하고 관두는 게 어려울 수도 있다. 자신이 투자한 시간과 비용과 노력이 너무 아까워서 말이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과거에 얼마를 투자했는가가 아니라 지금 이 선택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앞으로의 시간은 선택할 수 있다. 때론 ‘계속하는 인내’보다 ‘그만두는 용기’가 더 지혜로운 선택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내려야 할 판단은 오직 하나다.
이 선택이 나에게, 지금 이 순간에,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 도움이 되는가?
참고문헌
1) Arkes, Hal & Blumer, Catherine. (1985). The psychology of sunk cost.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35. 124-140.
※ 심리학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에 방문해서 확인해보세요!
※ 심리학, 상담 관련 정보 찾을 때 유용한 사이트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 심리학, 상담 정보 사이트도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 재미있는 심리학, 상담 이야기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soobin_you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