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아침 조회 시간.
윤하림은 언제나처럼 교탁 앞에 서 있었다.
정갈한 머리, 흠잡을 데 없는 단정한 복장, 단호한 말투.
하지만 오늘, 그녀의 목소리는 단 한 번도 정시아를 향하지 않았다.
시아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하림의 눈동자가 단 한 번도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다는 사실.
“요즘 자꾸 안 하던 실수를 하네, 하림아.”
수업이 끝나고 교실을 나서던 담임 송수진이 툭 내뱉었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성적표 정리를 하던 하림의 책상에 시선을 떨궜다.
“수학 서술형 채점 기준, 너 지난번에 틀렸던 거 기억하지?”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정확하게 하겠습니다.”
하림의 대답은 기계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떨리고 있었다.
쉬는 시간, 하림은 복도 끝 창문 앞에 혼자 서 있었다.
그녀는 작은 쪽지를 꺼내어 펼쳤다.
손글씨로 적힌 문장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너만 모범생이었던 거 아냐.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아남으려 했던 거야.”
쪽지는 익명.
그러나 하림은 알고 있었다.
그 글씨체, 그 방식, 그 말투.
그건 고윤태가 학급 대항 연극 준비 때, 소품 뒤에 붙여놓았던 포스트잇과 같았다.
“살아남으려 했던 거야…”
하림은 그 말을 입으로 따라했다.
그 순간, 차가운 땀이 등 뒤를 타고 흘렀다.
저녁, 기숙사 방.
하림은 책상 앞에 앉아 지난 생활기록부를 꺼냈다.
그녀는 ‘윤태’의 이름이 적힌 생활 태도 부분을 여러 번 읽었다.
‘타인을 자주 도발함.
수업 분위기를 흐림.
집단 내 갈등 유발 요소 있음.’
이 코멘트는…
자신이 써서 담임에게 전달했던 것이었다.
그땐 당연했다.
누군가는 정리를 해야 했고,
윤태는 ‘이상한’ 아이였으니까.
무리와 다른 말투, 다른 관심사, 다른 태도.
하림은 그것이 불편했고, 그래서 ‘기록’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아이가 정말 잘못했던 걸까?”
하림은 그 말에 스스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날 밤.
하림의 책상 서랍에는 새로운 쪽지가 들어 있었다.
“네가 밀었잖아. 말이 아니라 사람을.”
하림은 소스라치듯 뒤로 물러났다.
창문은 닫혀 있었고, 교실은 아무도 없었다.
쪽지는 접혀 있었다. 접힌 방식조차… 윤태와 같았다.
그녀는 입을 가리며 속으로 웅얼거렸다.
“난… 그냥, 정리하려고 했을 뿐인데…”
작가의 말 :
15화는 윤하림이라는 인물이 처음으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게 되는 전환점입니다.
완벽을 강요당한 모범생이 진실 앞에서 무너져가는 과정을 통해,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도덕적 회색지대’를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다음 화는 정시아의 과거 기억을 단서로 한 플래시백 형식의 전개입니다.
기억과 죄의 경계에 선 그녀의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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