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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허서윤 ]


사진=스튜디오리코 SNS

직장인 A씨는 퇴근 후 지하철에서 웹툰 앱에 접속한다. A씨가 보는 웹툰은 ‘화산귀환’으로 몇 년 전 친구의 추천을 받아 보게 된 웹툰이다. 만화를 즐겨보지 않는 A씨였지만, 강력한 주인공과 일명 ‘사이다’식 전개에 A씨는 쾌감을 느꼈고, 금세 웹툰에 빠져들게 되었다. 


강력한 주인공의 등장, '먼치킨'


아주 강력한 능력의 주인공이 문제를 어려움 없이 해결해 나가고, 악을 처단하고 세상을 구하는 식의 전개는 최근 웹툰 시장에서 성행하고 있다. 이른바 ‘먼치킨물’이라고 불리는 장르이다. ‘먼치킨’이란 다른 캐릭터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캐릭터를 칭하는 용어로, ‘먼치킨물’에서는 이 ‘먼치킨’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설정되어 주인공이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한다. 웹툰 <화산귀환>, <나 혼자만 레벨업> 등은 대표적인 먼치킨물로 이들이 인기를 통해 강한 주인공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을 엿볼 수 있다. 


보통 영웅적 주인공에게 빠질 수 없는 것은 바로 역경을 마주한 후 찾아오는 실패와 좌절,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을 통한 성장이다. 만화 <원피스>의 작가 오다 에이치로는 한 인터뷰에서 “캐릭터 설정에 주의해야 하는 것은 주인공을 너무 강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인공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 독자가 느끼는 재미이므로 이를 충분히 포함해야 한다는 것을 전하였다. 그러나 한국 먼치킨 물에는 이러한 성장이 생략되어 있다. 주인공은 처음부터 강하다. 갑작스럽게 강한 능력을 받았다거나, 시간을 회귀하여 벌어질 사건을 다 알고 있기에 강하다거나, 어떤 역경에도 실패하는 일 없이 강한 모습만을 보여준다. 


먼치킨물 유행에 숨겨진 한국인들의 심리는?


환상은 사회적 맥락 안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현실과 분리할 수 없고, 현실의 속박에서 야기된 결핍과 상실을 환상이 보상한다는 로지 잭슨의 말에 비추어 볼 때, 먼치킨물을 통해 우리는 한국 사회의 결핍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예로부터 고전 문학 속 영웅 서사에는 민족의 소원, 서민들의 욕망이 담겨있었다. 예를 들어, <홍길동전>에는 신분제의 억압에 저항하고자 하는 욕망이, <박씨전>에서는 병자호란의 패배와 고통에 복수하고자 하는 민중들의 욕망이 내재되어 있었다. 먼치킨물이라는 일종의 현대판 영웅소설을 잘 살펴본다면 한국인들의 심층적인 심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먼치킨물의 독자들은 답답함을 싫어한다.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조금만 어려워해도 ‘고구마’를 호소하면서 ‘사이다’를 달라고 요청한다. 주인공이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고, 쉽고 빠른 문제 해결을 원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역으로 현대 사회에서 한국인들이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다. 극심한 취업난과 빈부 격차,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계층 등 노력만으로 극복하기 힘든 것이 현대인들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또한 먼치킨 주인공들은 우연히 얻은 강력한 능력 혹은 회귀를 통해 미래의 사건을 예지할 수 있는 능력으로 문제들을 해결한다. 현대인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대목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나한테 이런 능력이 생긴다면 모든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을텐데’, ‘시간을 되돌려 그때로 돌아간다면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텐데’ 이런 욕망이 반영된 것이다.


'사이다'식 전개가 내 삶에도...


현대인들에게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역경은 더 이상 지긋지긋한 것이다. 이 역경을 쉽고 빠르게 해치울 수 있는 먼치킨적이고 비현실적인 능력을 욕망한다. 이 욕망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것이 한국식 먼치킨물이다. 사회의 각박함에서 벗어나 ‘사이다’식 전개가 나의 삶에도 벌어졌으면 하는 욕망, 이는 우리 삶이 얼마나 팍팍한지 보여준다. 


오늘 하루는 어땠는가. 내가 당면한 문제들이 너무나 거대해 내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는지 묻고 싶다. 먼치킨물은 힘든 게 당연한 사회라는 것을 말해준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초인적인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힘들 수밖에 없는 사회.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괴로울 때면 웹툰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수많은 먼치킨물을 보며 모두가 힘든 사회라는 것에 조금이나마 위로를 얻어도 좋을 것 같다. 언젠간 먼치킨물의 유행이 저물게 된다면, 그것은 조금은 살만한 사회가 되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먼치킨물의 유행이 사그라들기를 조금은 바란다. 


참고문헌

1) 정채희. (2024, 3). “내 삶이 고난과 역경 극복의 스토리인 것을… 슈퍼파워 갖춘 먼치킨만 보고 싶다”. 한경BUSINESS,(1476), 14-17.

2) 박정아, 원용진. (2019). 판타지는 어떻게 텔레비전 장르가 되었나 판타지 드라마의 장르 형성 과정에 대한 탐색적 연구. 미디어융합연구, 27(0),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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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7-23 08:4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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