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정시아는 그날 밤, 잠에서 깼다.
아무 꿈도 꾸지 않았는데, 가슴은 거칠게 뛰고 있었고, 손끝은 얼어붙은 듯 차가웠다.
기억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복구되고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지워진 적이 없던 걸지도 모른다.
—[플래시백 시작]
음악실 복도는 조용했다.
해는 이미 저물고, 창문 밖엔 겨울의 어둠만이 내려앉아 있었다.
“윤태야.”
정시아는 조심스레 말했다.
그는 문 옆에 앉아 있었다.
책가방은 풀어져 있었고, 그의 눈은 멀리 어디를 향한 것 같았다.
“왜 여기 있어?”
시아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윤태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웃었다.
그 미소는 이상할 정도로 평온했다.
그 어떤 원망도, 분노도 없었다.
“다들 편해지길 바라더라.
내가 사라지면… 괜찮아질 거 같대.”
시아는 말이 막혔다.
그 순간, 윤태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넌… 편해지고 싶어 해?
내가 없으면, 넌 조금은 더 안심하겠지?”
“아니야… 그런 뜻이 아니야.”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러나 윤태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나도 알고 있었어.”
그의 눈동자엔 아무런 원망이 없었다.
그것이, 오히려 잔인했다.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해도 돼?”
“뭐든지.”
윤태는 주머니에서 작은 쪽지를 꺼내 시아에게 건넸다.
“이건… 네가 꼭 기억했으면 좋겠어.”
시아는 그 쪽지를 받아 들고, 그대로 달아올랐다.
손끝이 뜨거워졌고,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쪽지엔, 그녀 자신조차 부정하고 싶은 단어들이 쓰여 있었다.
—[현재 시점]
정시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상 서랍을 열고, 오래된 봉투 하나를 꺼냈다.
봉투 안에는 그때 받은 쪽지와, 접히지 않은 새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쪽지를 펼쳤다.
“사람은, 누구나 침묵할 권리가 있다.
그건 거짓말보다 훨씬 잔인한 폭력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문장은, 고윤태의 마지막 기록이었다.
시아는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그때의 너는, 웃고 있었어.
그 웃음이… 나를 가장 아프게 했어.”
—교실 복도, 오후 6시 47분.
정시아는 교무실 앞에서 담임 송수진을 기다렸다.
손에는 그 봉투가 들려 있었다.
그녀는, 침묵을 끝내러 가고 있었다.
작가의 말 :
이번 화는 《침묵의 교실》에서 가장 감정적으로 무거운 회차 중 하나였습니다.
정시아와 고윤태, 두 인물 사이의 침묵과 비밀이 조금씩 실체를 드러냅니다.
이 작품의 주제 중 하나인
"기억과 죄의 경계", "침묵이 남기는 상처"를 가장 깊게 느낄 수 있는 회차였기를 바랍니다.
다음 화는 송수진의 관점이 중심이 되는 첫 회차입니다.
끝까지 함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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