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송수진 — 2024년 겨울]
“담임은 중립을 지켜야 해.”
그 말을 그녀는 몇 번이나 되뇌었다.
심지어 윤태가 죽기 며칠 전, 교장에게서도 같은 말을 들었다.
“문제아 하나에 휘둘리지 마. 반 전체가 중요해.”
그 말이 지금도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교무실 한편,
송수진은 정시아가 건넨 봉투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 봉투는 가볍지 않았다.
종이 몇 장일 뿐인데도, 마치 자신의 지난 몇 개월이 몽땅 들어 있는 듯한 무게였다.
‘열어선 안 된다’는 생각과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동시에 교차했다.
그녀는 조용히 봉투를 열었다.
속에는 정시아의 필체로 된 쪽지 한 장과… 고윤태가 남긴 마지막 기록의 복사본이 들어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침묵할 권리가 있다.
그건 거짓보다 더 큰 폭력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시아의 글.
“선생님은 그 침묵을 선택하셨나요?
아니면… 익숙해지신 건가요?”
송수진은 눈을 감았다.
[회상 — 그날]
윤태는 상담실에 들어왔지만, 그날의 대화는 상담이라기보다 지적에 가까웠다.
“윤태야, 네 태도는 다른 아이들에게 불편함을 줘.”
“…뭐가요? 말하는 방식이요, 듣는 태도요, 아님 그냥… 내가 있다는 게요?”
송수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왜 아무 말도 안 해요?
그날, 애들이 내 이름으로 돌린 그 설문지, 그거 보셨잖아요.”
“그건 공식적인 내용이 아니었어. 학교는 그런 건 인정하지 않아.”
“그러니까… 가짜로 만들어진 걸 다들 믿는데,
진짜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는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 안 하는 거죠.”
윤태의 말은 뚜렷했고, 차분했지만… 동시에 깊은 절망이 깃들어 있었다.
그날 이후, 그는 학교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송수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현재 시점]
정시아가 교무실 문 앞에서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그 봉투 안의 글은… 윤태가 가장 마지막에 남긴 말이에요.”
송수진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저는, 윤태가 왜 그렇게 끝내야만 했는지, 이해하고 싶어요.
그걸 이해하지 않으면, 지금 여기 남은 우리가… 계속 망가질 것 같아서요.”
시아의 말은 단정했다.
그 순간, 송수진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자신이 감추려 했던 것은 ‘진실’이 아니라,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는 것을.
“…그 아이가 처음 상담실에 들어온 날,
난 벌써… 아이들을 구분하고 있었던 것 같아.”
“어떻게요?”
“소란을 일으키는 아이와… 조용히 피해 가는 아이.
그리고, 그걸 기록하는 나.”
그녀의 손이 떨렸다.
“근데 시아야… 선생님도 사실은—
가장 먼저 울고 싶었던 사람이었어.”
작가의 말 :
17화는 《침묵의 교실》에서 처음으로 ‘어른의 책임’과 ‘침묵의 구조’를 마주하는 중요한 회차였습니다.
송수진은 악의적인 인물은 아니지만, 무기력한 어른의 전형으로 그려집니다.
다음 화에서는 보다 직접적인 증거가 등장하면서, 서사가 한 번 더 흔들리게 됩니다.
계속 함께해주세요. 점점 진실에 가까워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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