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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전세희 ]



오리온 초코파이 정

위의 사진은 한국인이라면 한번은 먹어봤을 오리온 제과의 '초코파이 정(情)'이다. 한국인의 과자 이름에도 '정(情)'이 들어가 있다. 오리온의 초코파이가 국민 과자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비결은 정(情)에 있다. 1989년부터 시작된 초코파이 정(情) 광고는 현대인들이 잊고 살아왔던 정서인 '정(情)'을 다시 떠올릴 수 있게 했다. 광고도 이에 맞게 '엄마와 아이', '건널목 아저씨' 등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인물들로 제작되었다. 한국인의 '정(情)'을 건드린 광고는 소위 말해 대박을 쳤고 여전히 지금도 손에 쉽게 쥐어줄 수 있는 과자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정이란 대체 무엇이길래 '정'을 이용한 광고가 성공할 수 있었고, 소비자인 한국인의 마음을 울릴 수 있었던 것일까.



한국인의 '정'


한국인이라면 한번은 느껴봤을 '정',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한국인이 정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정이란 과연 무엇이고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정이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유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애정이나 연민, 동정심과 같은 다양한 정서가 포함되어 있고 그중 가장 많이 느끼는 정서는 편안함이다. 흔히 연인 사이에서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를 꼽으라고 한다면 '정 떼기가 두려워서', '미운 정이 들어서'와 같이 정과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처럼 많은 시간을 함께해 온 상대에게 느껴지는 감정은 편안함이 가장 클 것이다. 더 이상 지나친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고,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서 주는 편안함은 쉽사리 끊기 어렵다. 


한국인은 정을 느끼기 위해서 4가지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성: 오랜 기간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야 하는 것

동거성: 즐거움과 어려움을 함께하는 동고동락 하는 것

다정성: 도움을 베풀고 흥미와 관심을 보이며 상대방을 친절하게 대하고 좋아하며, 상대방에 대한 편안하고 친근한 감정을 느끼는 것

허물없음: 자신의 비밀이나 고민과 같은 속마음을 편안하게 공유하는 것


이처럼 정은 상대방과 오랜 기간 함께 가까이 동고동락하면서 모든 것을 편하게 공유하면서도 그 사람을 배려하고 위하는 마음이다. 이 네 가지 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한국인이 말하는 정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 있다. 이러한 정은 한국인의 대인관계에서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연결고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아주 친밀한 관계란 너와 나의 구분이 없어지고 하나가 되면서 서로 일체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의 정은 매우 깊고 서로가 서로의 삶에 스며들도록 한다. 우리가 흔히 나 자신을 설명할 때 장녀, 장남이라고 말하거나 누구와의 친구라고 말하는 것 또한 한국인만이 갖고 있는 정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나와 긴밀한 정을 나누고 있는 친구, 가족, 혹은 동료라면 '우리'라는 정체성이 생기고 너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차별점을 두며 더욱 돈독한 관계를 이어나간다. 한국인은 흔히 '우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나와 친밀한 다른 사람을 나와 같은 집단에 소속시키는 단어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인의 대인관계 핵심은 우리성-정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정에는 좋은 점만 있을까.



'정'의 이면


사실 한국인의 정은 양날의 검이다. 정이 많은 사람의 성향은 인간적으로 연약해서 타인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자신이 불편을 겪으면서까지 타인의 입장에 공감하고 이해하는 등 타인에 대한 이타심이 매우 강하다. 이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스트레스에 훨씬 취약하며 생활 만족도가 낮고,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이 아닌 집단 차원에서 보면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한국인들은 상대방을 '우리'와 '남'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나와 같은 학교를 나온 학연, 나와 같은 피를 나누고 있는 혈연 등의 사람들을 나의 범주 안에 넣고 남들과는 다르게 더 특별히 대해주기를 원한다. 실제로 Han과 Choe의 연구에 따르면 회사에서 알게 된 상사가 자신과 연고 관계에 있을 때, 그 사람에게 더 친근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을 때보다 더 컸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공적인 일도 사적인 일로 변화하게 될 경우가 많아지고 객관적으로 잘못된 행동도 '정'이라는 관계로 합리화를 할 가능성이 많아진다. 오히려 청탁에 응하지 않으면 의리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받을 수도 있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차원으로 문화를 연구하고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의 국가는 집단주의 사회로 범주화해 왔다. 하지만 현재 한국은 집단주의와 같은 가치가 빠르게 쇠퇴하고 자율성이나 독립성과 같은 개인주의적 가치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빠르게 확산되는 탓에 서로의 가치관이 맞지 않아 세대 갈등이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따라서 최근에는 한국 문화를 집단주의가 아닌 사회적 관계망을 중시하는 관계주의로 보자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한국인은 우리성에 기초한 나의 집단에 들어온 사람들만을 집단주의적 가치관으로 보기 때문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 과거에 공동체를 잇는 정서적 접착제 역할을 했던 '정'은 점점 설 자리가 좁아져 가고 있다.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 하나의 정체성을 느꼈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나의 집단에 들어온 사람들만을 챙기기에도 벅차기 때문이다. 둘 중 어느 것도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시대의 흐름이 변화했고, 이에 맞추어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달라진 것 뿐이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정을 무조건적으로 이상화하기보다는, 오히려 건강한 거리감 위에서 새로운 방식의 연대와 공감이 자라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1) 대인관계와 의사소통의 심리학. 정태연 저

2) Han, G., & Choe, S.-M. (1994). Effects of family, region, and school network ties on interpersonal intentions and the analysis of network activities in Korea. In U. Kim, H. C. Triandis, Ç. Kağitçibaşi, S.-C. Choi, & G. Yoon (Eds.), Individualism and collectivism: Theory, method, and applications (pp. 213–224). Sage Public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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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7-03 08: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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