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점심시간.
아이들이 교실을 빠져나가고, 복도는 잠시 고요해졌다.
정시아는 USB를 손에 쥐고 윤하림의 자리로 향했다.
하림은 책상에 앉아 있었고, 시아의 그림자가 그녀의 교과서 위에 드리웠다.
“잠깐 얘기할 수 있을까?”
하림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손끝으로 책장만 넘기고 있었다.
“하림아.”
그제야 하림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빛은 여전히 단정했지만, 눈꺼풀 아래의 흔들림은 숨길 수 없었다.
시아는 USB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이 안에, 네가 그날 윤태랑 나눈 대화가 있어.
그리고… 누가 있었는지도 찍혀 있어.”
하림의 손이 멈췄다.
“…영상?”
“응. 네가 윤태에게 뭐라고 했는지,
그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도 다 있어.”
잠시 정적.
그리고 하림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뜻밖이었다.
“…그래서?”
시아는 멈칫했다.
“그래서, 이걸 어쩌겠다는 거야?
나를 신고해?
다들 보는 앞에서 ‘가해자’라고 낙인찍을 거야?”
“그게 아니라—”
“내가 죽였다고 말하고 싶은 거잖아.
근데 그거 알아? 그날 나 혼자 있었던 거 아니야.
그 자리엔 다들 있었어.
침묵했던 아이들, 피하던 선생님, 고개 돌렸던 너까지.”
“…….”
“왜 나야? 왜 하필 나한테만 이걸 보여줘?”
그 순간, 시아는 조용히 말했다.
“…넌, 아무 말도 안 했으니까.”
—하림의 입술이 떨렸다.
“말해봤자였어.
윤태는 이미… 애들한테 찍혔고, 선생님들도 그 애를 불편해했어.
내가 뭘 했든, 달라지지 않았을 거야.”
“아니.”
시아는 단호하게 말했다.
“넌 말할 수 있었어.
그 말 한 마디가, 윤태한테는 마지막 줄이었을지도 몰라.”
하림은 입을 다물었다.
눈이 붉게 충혈되기 시작했고, 시선은 교탁 아래로 떨어졌다.
“…나, 그런 줄 몰랐어.”
“그걸 지금 인정하면 돼.
그리고 나서 네가 진짜 해야 할 말을 해.”
—정적.
그리고 드디어, 윤하림이 입을 열었다.
“그날… 난, 윤태가 떨어질 줄 몰랐어.
난 그냥, 말로… 말로 밀어냈을 뿐인데…”
눈물이 떨어졌다.
“내가 아니었어.
진짜로, 나 혼자 그런 거 아니었단 말이야…”
시아는 조용히 USB를 다시 주워 가방에 넣었다.
“그렇다면…
다들 그랬다는 거,
누군가는 처음으로 말해야 해.”
작가의 말 :
이번 19화는 《침묵의 교실》 전체 구조에서 매우 중요한 ‘감정의 전환점’입니다.
윤하림은 더는 완벽한 모범생도, 절대적인 가해자도 아닌 불완전한 인간으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죄를 인정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그걸 말로 꺼내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습니다.
다음 화는 드디어 고윤태가 남긴 마지막 의도적 기록이 등장합니다.
정시아의 진실 추적도 끝을 향해 갑니다. 끝까지 함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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