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정시아는 교실에 홀로 남아 있었다.
창밖에는 어둠이 내려앉고, 형광등은 낮게 윙윙거렸다.
책상 위에는 누렇게 바랜 노트 한 권이 펼쳐져 있었다.
고윤태의 심리 일지.
그것은 그가 ‘심리부검 대상’이 된 이후, 유품 중 유일하게 남겨졌던 노트였다.
송수진 교사가 말없이 내밀었고, 시아는 그것을 받아들었다.
11월 10일
오늘도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꺼내면 누군가는 고개를 돌릴 테니까.
그리고 난 그 시선을 보는 게 제일 무섭다.
11월 15일
윤하림은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그 애는 날 보지 않으면서 나를 지운다.
사람이 투명해지는 느낌이 이런 걸까.
11월 23일
오늘 조현빈이 나한테 물었다.
“넌 왜 그렇게 가만히 있어?”
근데 웃긴 건— 나도 그 애가 그렇게 가만히 있는 걸 똑같이 묻고 싶었단 거다.
11월 28일 (마지막 기록)
만약 내가 내일 사라진다면,
누군가 날 기억해줄까?
꼭 네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내가 여기 있었단 걸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그래야 내가 정말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잠깐 멈추는 거라고 믿을 수 있으니까.
정시아는 노트를 덮었다.
손끝이 조금 떨렸다.
윤태의 마지막 문장은 ‘원망’도, ‘고발’도 아니었다.
그건 단지,
누군가가 자신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절실한 바람이었다.
—다음 날,
시아는 조현빈과 함께 학교 게시판 앞에 섰다.
그곳에는 작은 메모 하나가 붙어 있었다.
[기억합니다 — 고윤태]
당신은 혼자였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하림은 게시판을 보고 잠시 멈췄고,
송수진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그 자리에 있었다.
이제,
정말로 말할 준비가 된 것뿐이었다.
작가의 말:
20화는 《침묵의 교실》 1막의 마지막 회차입니다.
고윤태의 진실이 밝혀졌고,
이는 복수극도, 고발극도 아닌 기억의 드라마로 귀결되었습니다.
누군가를 잊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을 ‘존재하게 만드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습니다.
다음 화부터는 ‘진실 이후의 이야기’,
남겨진 자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집중합니다.
2막도 끝까지 함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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