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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실은 조용했다.

이곳은 언제나 깔끔했고,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시아는 알았다.

정돈된 공간일수록, 지워진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정시아 학생, 이 자리는 학생이 쉽게 들어올 곳이 아니야.”


교장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단호했다.

그 옆엔 송수진 교사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아는 조용히 USB 하나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이 안에는 윤태가 죽기 전날의 영상이 들어 있습니다.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명확하게 나옵니다.”


교장은 그걸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서, 뭘 원하니? 그 학생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조사도 마무리된 사안이야.”

“조사가 끝났다고 해서, 책임도 끝나는 건가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이건 도의적인 문제야, 정시아 학생.

누구를 특정해서 처벌하거나, 공개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누구도 처벌하란 말 한 적 없어요.”


시아는 끊어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어요.

아무도, 자신이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학생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건 이해하지만—”

“그럼 누가 감정적이어야 하죠?”


시아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죽은 사람도, 목격한 사람도, 기억하는 사람도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도대체 이 교실은 누가 책임지나요?”


—교장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교육이라는 건 말이지… 모두를 지켜야 하는 일이야.

특정한 희생자나 특정한 가해자에게 초점을 맞추면, 나머지 아이들이 무너질 수도 있어.”

“그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누군가를 묻은 건가요?”


정시아의 말에 송수진 교사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가엔 물기가 맺혀 있었다.


“시아야…”


시아는 조용히 일어섰다.


“책임지지 않아도 돼요.

대신, 외면하지 마세요.

누군가는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이라도,

아이들에게 알려줘야 하니까요.”


—그날 오후.


학교 벽보 게시판에 작은 종이가 붙었다.

[학생 보호 및 공동체 회복을 위한 심리 지원 공지]

익명 상담 및 자발적 진술 가능. 담당자: 정시아


누가 붙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보고 멈춰 선 사람은 있었다.


윤하림.

조현빈.

그리고… 송수진.




작가의 말 :

22화는 《침묵의 교실》에서 개인을 넘어서 학교라는 구조 자체를 정면으로 다루기 시작한 회차입니다.

이제 이야기는 단순히 한 명의 죽음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책임을 나누며, 회복하는 과정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다음 회차에서는 여러 학생들의 목소리가 엮이는 집단 진술 에피소드로 진행됩니다.

함께 걸어가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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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6-19 09:5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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