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원
[한국심리학신문=배정원 ]
“나는 이제야 누군가의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몇 년째 우울증으로 고립된 삶을 살던 이들은, 특정 치료 이후 그렇게 말했다. 흔히 우울증은 무기력함, 의욕 저하로만 설명되지만, 사실 정서적 공감(emotional empathy)의 결핍 역시 우울증을 견디기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타인의 감정을 인지하거나 반응하는 능력이 둔화되면, 고립감과 사회적 단절은 더욱 심해진다.
최근, 이 ‘공감 능력’ 회복에 새로운 치료제가 등장했다. 놀랍게도 이 치료제의 이름은 psilocybin(실로사이빈) — 흔히 ‘환각제’ 혹은 ‘마법의 버섯(magic mushroom)’으로 알려진 물질이다.
이 버섯, 겉으로 보기에는 안전해 보여도 환각을 일으킬 수 있는 성분을 가진 버섯이다. (출처=National Center for Complementary and Integrative Health)
“공감 능력이 돌아왔다”
2024년, 오스트리아 의과대학의 신경과학자 Julia Jungwirth 박사 연구팀은 주요우울장애(MDD)를 겪고 있는 환자 51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통해 psilocybin의 공감 회복 효과를 관찰했다. 참가자들은 단 한 번의 psilocybin 투여(0.215mg/kg) 또는 위약(placebo)을 받은 뒤, 4주간 심리적 지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Julia Jungwirth 박사의 연구팀이 계속 진행해 온 psilocybin에 대한 연구에 한 획을 긋는 논문이다. (출처=Molecular Psychaitry)
연구에서는 다면적 공감 검사인 Multifaceted Empathy Test(MET)를 이용해 투여 전과 후(2일, 1주, 2주)의 감정 공감 능력을 추적 관찰했다. 그 결과, psilocybin을 복용한 환자 그룹은 특히 긍정적 감정 자극에 대한 감정적 공감(emotional empathy) 수준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으며, 이러한 효과는 최소 2주 이상 지속되었다.
특히 눈여겨볼 점은, 위약 그룹과 비교했을 때 psilocybin을 복용한 집단에서 공감의 질과 강도 모두에서 뚜렷한 차이가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연구진은 이 변화가 단순한 기분 상승 효과라기보다는, 정신질환으로 손상된 사회적 인지 기능을 회복시키는 단서로 작용할 가능성에 주목했다.
Jungwirth 박사팀은 이번 결과에 대해 “감정 공감의 회복은 단순한 감정 조절을 넘어, 환자의 사회적 관계 회복과 일상 적응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마법의 버섯이 약이 되기까지
psilocybin은 원래 환각 작용을 유발하는 향정신성 물질로 알려져 있었다. 1960~70년대 미국에서는 이 약물이 히피 문화와 연관되어 금지 약물로 분류되었고, 국내에서도 마약류 관리법에 따라 규제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들어 psilocybin의 우울증, PTSD, 불안장애, 말기 암 환자의 불안 완화 등 정신질환 치료 효과가 국제적으로 재조명되면서, 의학적 활용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미국 FDA는 2018년 psilocybin을 “획기적 치료제(Breakthrough Therapy)”로 지정했고, 2024년부터 일부 임상시험을 조건부 승인했다.
여기서 핵심은, 이 약물이 단순히 ‘기분을 좋게 만드는 환각제’가 아니라, 인지, 정서, 공감 등 고차원적인 뇌 기능을 회복시킬 수 있는 치료 수단이라는 점이다.
불안장애 및 여러 질병의 상태를 완화시킬수 있는 물질이라고 한다. (출처=프리픽)
국내에선 아직 걸음마 단계
국내에서는 psilocybin이 여전히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엄격히 금지되어 있지만, 학계와 정신의학계에서는 점차 이 물질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서울대학교병원, 가톨릭중앙의료원 등 일부 기관에서는 ketamine(케타민)이나 MDMA처럼 마약류로 분류되던 약물의 치료적 가능성에 대해 사전연구를 진행 중이다. psilocybin 역시 국제 연구 결과에 따라 향후 제한적 치료 사용이 허용될 가능성이 있다.
감정 공감은 사치가 아니다
우울증은 개인이 혼자 발달하는 병은 아니다. 점차 단절되어가는 사회 구조 속에 타인을 이해하고 남들과 연결하는 능력 자체가 약화되는 병리 현상이기도 하다.
남의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힘, 공감 (출처=프리픽)
Psilocybin이 보여주는 변화는 단순히 우울감을 덜어주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인간 사이의 정서적 거리를 좁히고 관계 회복이라는 더 깊은 차원의 치료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때 ‘마법의 버섯’이라는 금기로 불리던 이름은 이제 치료실 안에서 공감 회복을 위한 도구로 다시 조명되고 있다. 감정을 잃어버린 시대에, 이 물질은 새로운 치유의 언어로 말 걸고 있는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Jungwirth J, von Rotz R, Dziobek I, Vollenweider FX, Preller KH. Psilocybin increases emotional empathy in patients with major depression. Mol Psychiatry. 2025 Jun;30(6):2665-2672. doi: 10.1038/s41380-024-02875-0. Epub 2024 Dec 18. PMID: 39695323; PMCID: PMC12092279.
National Center for Complementary and Integrative Health. (2024, April). Psilocybin for mental health and addiction: What you need to know. U.S. 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 https://www.nccih.nih.gov/health/psilocybin-for-mental-health-and-addiction-what-you-need-to-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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