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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교실》 23화 - 23화. 그날 이후, 나는 아무에게도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 기사등록 2025-06-20 08:5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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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엔 여전히 책상만이 줄지어 있었다.

고윤태의 자리는 비어 있었고, 그 공백은 의도적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누구도 그 자리에 앉지 않았고, 누구도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정시아가 말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다음 주까지, 자발적인 진술을 받아요.”


시아는 칠판에 붙은 공지문을 가리켰다.


“의무도 아니고, 익명도 가능해요.

굳이 글이 아니어도 돼요. 말도, 그림도, 기억 하나만이라도 괜찮아요.”


아이들은 웅성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조용해서, 그 고요가 낯설 정도였다.


—첫 번째 쪽지는 이틀 후였다.


[익명]


“그날 이후, 나는 아무에게도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윤태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똑같이 살아갔다.

그게 제일 끔찍했다.”


정시아는 그 쪽지를 조용히 복사해 상담실 앞 게시판에 붙였다.


—두 번째는 종이컵 뒷면이었다.


[이름 없음]


“그날 내가 그 복도를 지나갔다.

그리고 문 틈 사이로 윤태를 봤다.

근데 그냥 모른 척했다.

혹시라도 나한테 뭐라고 하면 어쩌나 싶어서.

나, 너무 비겁하죠?”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자, 쪽지는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그를 싫어한 건 맞다. 근데, 죽을 만큼 싫은 건 아니었다.”

“우리 반이 이상한 건 아니었어요. 그냥, 너무 평범해서 문제였던 것 같아요.”

“그 애가 웃는 걸 처음 본 날, 난 되게 놀랐어요. 원래 그런 얼굴이 있다는 걸 몰랐으니까.”


—일주일 후,


정시아는 그 모든 쪽지를 한 권의 파일로 엮어 학교 상담부에 제출했다.

제목은 단순했다.


《기억의 조각》


누구의 고백도 완전하지 않았고,

어떤 진술도 정답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쌓이자,

하나의 무게가 되었다.


—그날 오후.


윤하림은 조심스럽게 상담실 문을 열었다.

정시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았다.

하림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작게 말했다.


“…이제, 말해도 될까?”


정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의 말 :

이번 23화는 《침묵의 교실》의 구조가 바뀌는 중요한 회차입니다.

기억, 죄책감, 외면, 침묵… 그 모든 감정이 모여 ‘공동의 감정’이 되는 과정이죠.

정시아는 이제 관찰자가 아닌 기록자이자 전달자로 거듭납니다.

다음 화는 하림의 진술을 중심으로, 잊힌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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