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우
[ 한국심리학신문=채진우 ]
대한민국은 지금, 국가적 생존전략의 차원에서 ‘지방시대’를 중대한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된 인구와 자원, 기회는 비수도권 지역의 급격한 쇠퇴를 초래하였고, 그 결과 지역 간의 경제·사회적 불균형은 심화되고 있다.
수도권 일극체제의 고착은 지역 공동체의 해체뿐 아니라 지역 주민의 심리적 피로감, 소외감, 무력감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이는 단지 공간적 차원의 문제가 아닌 사람과 삶의 질, 정체성에 영향을 주는 깊이 있는 사회문제로 작동한다. 이러한 전환기적 맥락 속에서 심리학은 지방시대를 실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이론적 기초이자 실천적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핵심 학문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간의 행동과 감정, 인식,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심리학은 지역 재생의 과정에서 간과되어서는 안 될 핵심 축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지역 정체성이라는 개념은 지방시대를 심리학적으로 이해하는 출발점에 놓인다. 지역 정체성이란 개인이 자신이 속한 지역과 맺는 정서적 유대, 소속감, 자긍심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이는 단순히 거주지에 대한 행정적 속성이 아니라, 그 지역의 역사, 문화, 환경,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정체성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지역 정체성이 높을수록 개인은 자신이 사는 곳에 대한 책임감과 주인의식을 갖게 되며, 이는 자연스럽게 공동체 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로 이어진다. 반대로, 지역이 주변화되고, 쇠퇴하며, 사회적으로 낙인찍히는 경우에는 지역민의 소속감은 약화되고, 자존감은 손상된다. 그 결과, 청년층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아 지역을 떠나고, 남은 고령층은 점점 더 고립과 외로움에 시달리게 된다. 이러한 정서적 탈락은 지방소멸이라는 구조적 문제의 심리적 기반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공동체 심리학은 이러한 문제들을 보다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개입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공동체 심리학은 개인을 독립적 존재로 보지 않고, 지역사회라는 맥락 속에서 인간을 이해하려는 접근을 취한다. 즉, 인간의 심리와 행동은 공동체의 구조와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다는 전제 위에서 출발하는 학문이다.
공동체 심리학은 특히 참여(participation), 자율성(autonomy), 심리적 역량 강화(empowerment),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개념에 주목하며, 이는 지방시대가 지향하는 지역 주도 발전 및 자립성과 일치하는 지점이 많다. 주민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마을 단위에서 자신들의 필요를 반영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발전과 정서적 회복력이 형성된다. 특히 사회적 자본은 지역 내 신뢰, 네트워크, 상호호혜성을 바탕으로 형성되며, 이는 지역 위기 시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중요한 심리적 자원이 된다.
심리적 안전감 또한 지방시대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심리적 안전감은 개인이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비난이나 배제 없이 수용될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심리적 안전감이 확보된 공동체에서는 창의성, 협력, 학습이 활성화되며, 구성원 간 신뢰 수준이 높아진다.
이는 결과적으로 지역 혁신 생태계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 필수적인 심리 환경이 된다. 청년들이 지역에 머물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창업하거나 공공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면, 무엇보다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시도할 수 있는 문화와 정서적 지지가 필요하다. 지역에서 자란 이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른바 ‘리턴 인재’ 정책 역시, 심리적 안전감과 정체성의 회복이 없이는 현실화되기 어렵다.
지방시대는 궁극적으로 심리적 안녕감의 분산과 평등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심리적 안녕감은 단지 정신병리의 부재를 뜻하지 않으며,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감정, 소속된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안정적인 정서 상태를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의 문화, 역사, 환경 등을 반영한 맞춤형 심리복지, 교육, 정신건강 서비스가 마련되어야 하며, 심리학은 이 과정을 설계하고 조정하는 핵심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 지역에서는 노인의 상실감과 고독을 완화할 수 있는 정서 중심 상담 프로그램이 필요하고, 청소년이 많은 중소 도시에서는 진로 불안과 사회적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심리교육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적 심리학은 각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한 서비스 설계를 가능하게 하며, 지역민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는 데 기여한다.
결국 지방시대는 단순히 행정구역을 조정하고 자원을 분배하는 시스템 개편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중심의 가치 체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심리학은 이 전환기에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들의 상처와 욕구를 진지하게 분석하며, 나아가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사회적 유대를 재구성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지역민을 정책의 수동적 수혜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자이자 공동체의 심리적 주체로 전환시키는 데 있어서도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 지방시대를 실현하는 과정은 곧 지역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이 심리적으로 존중받고, 자율적이며,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심리학은 분석자이자 설계자, 나아가 실천적 동반자로 자리잡아야 한다.
참고문헌
Kenneth, I. M., (2004). Community Psychology. University of Maryland, Baltimore County, Baltimore, Maryland, USA. https://doi.org/10.1016/B0-12-657410-3/00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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