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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교실》 25화 - 25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학생들이 대신 감당하고 있었다
  • 기사등록 2025-06-24 08:4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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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진 - 시점 전환]


복도 게시판에 붙은 쪽지들.

처음엔 그저 ‘한 아이의 죽음을 둘러싼 감정 배설’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들이 하나둘 늘어나며 ‘언어’가 되었고,

‘기억’이 되었고,

그제서야 송수진은 깨달았다.

그 교실은, 자신이 더 이상 알던 교실이 아니었다.


—교무실 책상 위엔 여전히 생활기록부가 정리돼 있었다.

윤하림, 조현빈, 이서연, 남도윤…

그들의 이름 옆엔


“리더십 우수”, “정서 안정적”, “표현력 탁월”


같은 단어들이 적혀 있었다.

그 기록 속엔,

윤태의 이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수진 선생님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세요?"


며칠 전, 정시아가 묻던 말이 떠올랐다.

그때 송수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그 질문을 듣는 게 두려웠다.

왜냐하면 그녀 역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울어야 했던 사람은, 선생님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자정이 넘은 학교 기록실.

송수진은 윤태의 생활기록부 사본을 꺼내 들었다.

구겨진 파일 사이에 꾹 눌러쓴 글씨 하나가 남아 있었다.


“타인을 자주 도발함. 수업 분위기를 흐림.

집단 내 갈등 유발 요소 있음.”


자신이 쓴 문장이었다.

그 당시엔 교무회의에서 요구했던 '기준'에 맞춰 정리했을 뿐이었다.

그 애가 웃었을 때,

그 애가 자기 자리에 책을 나눠줬을 때,

그 애가 반에서 누군가의 잘못을 대신 떠안았을 때…

그 모든 순간은, 기록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정시아는 상담실에서 쪽지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조용히 문이 열렸다.

송수진이었다.


“…정시아 학생.”

“네, 선생님.”

“…기록부는, 누가 봐도 되는 게 아니지?”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기록되지 않은 기억은, 잊히기 쉬워요.

그래서 남기려고요.

기억하려고.”


—잠시 침묵하던 송수진이 책상에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학생들이 대신 감당하고 있었구나.”


그 말은, 사과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무거운 진심이었다.


—그날,

교무실 벽면에 처음으로 교사 이름이 붙은 쪽지가 올라왔다.


[송수진]


“교사로서 나는 부족했고,

어른으로서도 침묵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작가의 말 :

이번 25화는 《침묵의 교실》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입니다.

송수진이라는 인물은 상징적으로 '교사이자 어른'의 역할을 대표하지만, 

동시에 시스템 안에서 무력했던 한 인간입니다.


그녀의 고백은 완벽한 사과가 아니라 ‘감정의 개입’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집니다.

다음 화는 학교의 공식 구조와의 마지막 충돌이 시작됩니다.

끝까지 함께해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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