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송수진 - 시점 전환]
복도 게시판에 붙은 쪽지들.
처음엔 그저 ‘한 아이의 죽음을 둘러싼 감정 배설’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들이 하나둘 늘어나며 ‘언어’가 되었고,
‘기억’이 되었고,
그제서야 송수진은 깨달았다.
그 교실은, 자신이 더 이상 알던 교실이 아니었다.
—교무실 책상 위엔 여전히 생활기록부가 정리돼 있었다.
윤하림, 조현빈, 이서연, 남도윤…
그들의 이름 옆엔
“리더십 우수”, “정서 안정적”, “표현력 탁월”
같은 단어들이 적혀 있었다.
그 기록 속엔,
윤태의 이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수진 선생님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세요?"
며칠 전, 정시아가 묻던 말이 떠올랐다.
그때 송수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그 질문을 듣는 게 두려웠다.
왜냐하면 그녀 역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울어야 했던 사람은, 선생님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자정이 넘은 학교 기록실.
송수진은 윤태의 생활기록부 사본을 꺼내 들었다.
구겨진 파일 사이에 꾹 눌러쓴 글씨 하나가 남아 있었다.
“타인을 자주 도발함. 수업 분위기를 흐림.
집단 내 갈등 유발 요소 있음.”
자신이 쓴 문장이었다.
그 당시엔 교무회의에서 요구했던 '기준'에 맞춰 정리했을 뿐이었다.
그 애가 웃었을 때,
그 애가 자기 자리에 책을 나눠줬을 때,
그 애가 반에서 누군가의 잘못을 대신 떠안았을 때…
그 모든 순간은, 기록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정시아는 상담실에서 쪽지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조용히 문이 열렸다.
송수진이었다.
“…정시아 학생.”
“네, 선생님.”
“…기록부는, 누가 봐도 되는 게 아니지?”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기록되지 않은 기억은, 잊히기 쉬워요.
그래서 남기려고요.
기억하려고.”
—잠시 침묵하던 송수진이 책상에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학생들이 대신 감당하고 있었구나.”
그 말은, 사과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무거운 진심이었다.
—그날,
교무실 벽면에 처음으로 교사 이름이 붙은 쪽지가 올라왔다.
[송수진]
“교사로서 나는 부족했고,
어른으로서도 침묵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작가의 말 :
이번 25화는 《침묵의 교실》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입니다.
송수진이라는 인물은 상징적으로 '교사이자 어른'의 역할을 대표하지만,
동시에 시스템 안에서 무력했던 한 인간입니다.
그녀의 고백은 완벽한 사과가 아니라 ‘감정의 개입’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집니다.
다음 화는 학교의 공식 구조와의 마지막 충돌이 시작됩니다.
끝까지 함께해줘서 고마워요.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