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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이건우 ]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서는 많은 집단 학살(홀로코스트)이 있었다. 인종 청소라는 엽기적인 명분을 가지고 많은 유대인에게 끔찍한 일들이 행해졌다. 이러한 행위의 중심에는 아돌프 아이히만이 있었다. 아이히만은 나치 독일에서 유대인 추방, 수송, 학살의 실무 총책임자였으며 600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아돌프 아이히만/사진=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우리는 공무원이며 국가를 위한 행위일 뿐이다.”

 

“나는 권한이 거의 없는 ‘배달부’에 불과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크건 작건 ‘아돌프 히틀러’나 그 외 어떤 상급자의 지시에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고 성실히 임무를 수행했을 뿐”

 

전쟁이 끝난 후 아이히만이 전범 재판에서 증언한 내용이다. 2차 세계 대전 중 행해졌던 많은 학살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상부의 지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며 자기 합리화하였다.

 


악의 평범성



교수이자 정치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에서의 양심 변화 과정을 연구한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아이히만의 황당한 발언에 대해 분석했다.

 

‘악의 평범성’은 평범하게 보이는 사람도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나 아렌트는 악이라는 것은 악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1차원적이고, 깊이가 없는 단순한 사고를 하는 무사유(thoughtlessness) 상태가 타인의 현실적인 입장을 상상할 수 없는 무능력으로 이어져 결국에는 악한 행위로 이어지게 된다고 말한다.


나치 돌격대원 집회에서 연설하는 아돌프 히틀러/사진=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상급자로부터 유대인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라는 단순한 사고의 무사유 상태가 추방, 수송, 학살당하는 유대인들의 현실적인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무능력으로 이어져 결국에는 무사유 상태를 경험하지 않은 타인 모두가 인정하는 악한 행위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나치의 집단 학살은 극도로 주관적이고 편향된 사고로 점철된 개인의 단순한 생각이 타인의 입장을 생각지 않고 그친다면 집단 학살로까지 이어지게 되고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밀그램의 복종 실험


 

1961년 미국의 예일 대학교 심리학과 조교수 스탠리 밀그램은 한 실험을 진행하게 된다.

 밀그램의 복종 실험/사진=위키백과


1. 피실험자 40명을 교사와 학생으로 나눈다.

2. 교사가 학생에게 문제를 내고 학생이 답을 틀릴 때마다 교사는 학생에게 전기 충격을 가한다.

3. 전기 충격은 스위치마다 점차 강도가 강해진다.

 

사실 실험의 전기 충격 장치는 가짜이며, 교사가 전기 충격 스위치를 누를 때마다 비명을 지르는 학생은 섭외된 배우이다. 공포심에 주저하는 교사가 스위치 누르기를 거부할 때마다 연구원은 교사에게 실험의 재개를 강요한다.

 

밀그램은 사람들이 명령이 있어도 최대 수준까지의 전기 충격을 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충격적이게도 65%의 교사가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수준의 최대 충격 스위치를 눌렀다. 이 실험은 아무리 이성적이고 윤리적인 사람이더라도 설득력 있는 상황이 생기면 도덕적 규칙을 간과하고 비도덕적인 명령으로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실험 이후 교수의 역할을 한 피실험자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충격을 받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하기도 하였다. 또한 밀그램은 피실험자들에게 실험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지 않고 끔찍한 행위를 지시했기에 실험 윤리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악의 굴레


 

사실 비윤리적 실험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꽤 많은 평범한 악이 도사리고 있다. 학교 폭력에 가담하는 사람, 직장 내에서 괴롭힘에 은근히 동조하는 사람, 계급 관계 아래에서 군 가혹 행위에 협조하는 사람같이 말이다. 이런 사람들의 행동의 결과만 놓고 보면 매우 악랄하고 나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원인을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도대체 왜 동조한 것인지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만두게 하지 못할망정 어떻게 이런 판단을 할 수 있는 건지 말이다.

 

밀그램의 실험, 상명하복하는 군대같이 강압적이고 엄격한 규칙 아래에서 개인은 사유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그저 전체를 위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개인의 사유와 자유 의지는 묵살 된다. 

 

사유하지 않는 개인은 악한 일들로 악한 사회를 만든다. 악한 사회는 다시 개인을 타락시키고 사유하지 못 하게 만든다. 악이라는 굴레가 개인과 사회를 속박한다. ‘악의 평범성’은 왜 우리가 끊임없이 사유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1961년 12월 15일 아돌프 아이히만은 재판에서 법정 최고 형인 사형을 선고 받고 이듬해에 형이 집행된다. 어쩌면 아돌프 아이히만은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전체를 위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성실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속이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사유하고 있는가?



참고문헌

1) 한나 아렌트. (2006).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길사.

2) 소병철. (2019). ‘우리 안의 아이히만’은 극복될 수 있는가?. 시민인문학,(37), 141-174.

3) 한길석. (2023). 사유함과 도덕: ‘악의 평범성’을 중심으로. 사회와 철학,(45), 115-141.

4) 카이스트신문[https://times.kaist.ac.kr/]. (2018). https://times.kaist.ac.kr/news/articleView.html?idxno=4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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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7-11 08: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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