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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김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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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성격이 참 좋아.”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대개, 성격 좋은 ‘○○씨’ 에 대한 호감과 함께 ‘나도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성격’에 대한 기준은 저마다 다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성격이 좋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좋은 성격’이란 게 대체 뭔데?

 

 

자신이 바라는 성향, 갖고 싶지만 가지지 못하는 모습, 동경하는 특성 등 모든 것들이 모여서 상대의 성격을 바라보는 ‘기준’이 된다. 이때 스스로가 바라거나 동경하는 특성은, 자랄 때 주변에서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했거나 자신에게 기대했던 성격일 가능성이 높다.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사람이 성격이 좋고 사회생활을 잘한다’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란 경우, 쑥스러움 때문에 타인과 거리를 두길 원하는 스스로의 성격을 ‘못난 성격’으로 치부하게 되고, 먼 훗날 자녀에게도 그러한 성격을 강요하게 될 수 있다. 성격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내면화되어 자신이 타인을 바라볼 때도 ‘좋은 성격’에 대한 기준이 되는 것이다.





 안녕나는 ‘참자기’라고 해나를 받아들여 줄래?

 

 

대상관계 이론가인 도널드 위니컷(Donald W. Winnicott)은 아이의 진정한 자아인 ‘참자기(true self)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아이는 스스로를 방어하고자 양육자의 기대에 맞춘 ‘거짓자기(false self)를 키워나가게 된다고 하였다. 위니컷뿐만이 아니라 많은 성격심리학자들이 ‘진짜 자기(자아)’와 대비되는, 사회의 기대 때문에 만들어낸 ‘다른 자기(자아)’로 인간을 설명했다. 카를 융(Carl G. Jung)의 페르소나 역시 그중 하나이다. 융은 우리가 타인에게 보이고 싶은 인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또는 스스로의 본질을 숨기고 보호하기 위해 ‘페르소나’라는 가면을 쓴다고 이야기했다. 직장 동료들과 잘 지내기 위해 그들이 원하는 친화적이고 외향적인 모습을 보인다거나,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순응적이면서 가족들의 필요를 우선시하는 ‘딸 역할’을 해내는 식이다. 우리는 학교나 직장, 가족들 사이에서 태도가 조금씩 바뀌곤 하는데, 그렇게 바뀐 가면은 자신의 본래 자아와는 거리가 멀다. 이것은 오히려 ‘타인에게 받아들여질 것인가’라는 전제조건을 만족하는 습관이나 행동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페르소나’ 혹은 ‘거짓자기’는 자아의 본모습이나 ‘참자기’라는 고유의 세계가 외부 사회에 부드럽게 섞일 수 있도록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또한 우리 성격의 일부가 되어 우리가 사회에 잘 적응하며 살 수 있도록 돕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본모습이 변형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변형된 ‘자기’가 ‘참자기’를 오래 대체하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부모나 사회가 바라는 모습인 ‘거짓자기’만이 지나치게 발달될 경우, 진정한 ‘자기’를 억압하거나 심지어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로 살아가게 될 수 있다. 겉으로는 적응적으로 잘 지내는 듯 보여도, 실제로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모방하거나 타인을 위한 삶에 가까울 뿐이다. 결국은 공허함과 허무함을 자주 느끼게 되고, 필요 이상으로 과한 반응을 보이거나 아예 관심 없는 척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스스로의 진짜 감정과 동떨어진 행동을 자주 한다면, ‘거짓자기’의 모습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맞춰주는 ‘거짓자기’가 과도할 경우, 상대를 거절해도 되는 상황에서도 거의 반사적으로 타인의 요청을 따른다. 그러느라 자기 욕구를 확실히 인식하거나 표현하지 못해서 관계에서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거짓자기’가 지나칠 경우 독립적이고 혼자 있길 바라는 자신의 필요를 외면하고 공허감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불일치가 지속된다면 억압된 정서적 피로와 긴장은 축적되고,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흐려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원하는 것에 욕심을 내거나 타인에게 양보하고 싶지 않은 순간에 ‘그러면 안 돼’라고 마음을 다잡곤 한다. 항의하는 목소리를 내고 싶을 때 ‘그러면 저 사람이 불편할 수 있으니까’라며 물러나는 것 또한, ‘착하고 순하다’라는 심어진 정체성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개인의 선호’보다 ‘사람들과의 조화와 관계’가 보다 중요시되는 문화권에서는 ‘주변의 요구에 잘 맞추는 사람’이 좋은 성격이라 여겨지기 마련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라는 압박이 있다. 그렇지 못할 때는, 눈치 없거나 까탈스러운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성격은 사실, ‘가능성’의 영역이야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다’는 사람이 남들의 입장에서 신경이 덜 쓰이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무엇을 싫어하는지 한 번 더 고려하지 않아도 괜찮기 때문이다. 예측하거나 통제하기 수월한, 털털하고 무난하며 순응적인 성격은 보통 사회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 보면, 단지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성격이 좋다’라는 틀에 씌워지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기준은 내재화되어 자신과 다른 사람을 같은 잣대로 평가하게 되고, 결국 ‘좋은 성격’이라는 사회적 기준이 재생산되게 한다.

 

사실 흔히 ‘좋지 못하다’라고 평가하는 성격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낙천적이고 무던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소한 일에도 전전긍긍하고 쉽게 걱정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보통 전자에는 호감을 보이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소심하거나 부정적인 사람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성격’이라는 것은 그저 ‘가능성’이다. 좋을 수 있고, 나쁠 수 있는 여지를 모두 가진다. 쉽게 걱정에 빠지는 사람은 항상 생각이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그만큼 여러 상황에 대한 대비를 잘 한다는 장점이 있다. 낙천적인 사람은 보통 추진력이 좋지만, 부정적인 측면을 잘 고려하지 못해 일을 망치기도 하고, 잘못된 정보로 오판을 하기도 한다. 무던하다는 사람들 역시 자기의 욕구를 제대로 인식하거나 누군가를 세심하게 배려해야 할 때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좋은 성격’의 기준에 들지 못한 사람이 스스로의 성격을 비난하거나 탓하게 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성격에 대해 ‘품평’하는 사회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 때문에 자기 자신의 성향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약해질 뿐만 아니라 ‘거짓자기’에 대한 집착만 깊어지게 된다. 부모나 속한 조직, 그리고 사회에서 바라는 성향과 다르다고 움츠러들거나 자신의 성격을 탓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사회가 기대하는 행동을 해줄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성격을 고수할 것인지는 이다음의 문제다. ‘거짓자기’와 ‘참자기’를 선택하는 순간인 것이다. 타고난 성향이 어떤 상황에서는 편안하고 좋아 보일 수 있지만, 또 어떠한 상황에서는 불편해서 못나 보이기도 할 것이다. 바로 이런 경우에 적절한 ‘가면’을 쓰는 것이 도움이 된다. 타인의 의견이나 취향이 거슬리지만 상대가 불편해할 만한 상황이라면, 보다 친화적인 가면으로 상대방에게 친근감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누군가가 불편해하더라도 스스로가 원하는 방식인 ‘진짜 나’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게 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자신의 ‘참자기’와 상대방의 ‘편안함’을 맞바꿀 수 없고,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향을 온전하게 지키고 싶다면, 그것 또한 괜찮은 선택이다. 심리학의 한 학파인 게슈탈트 학파에 따르면, 판단하지 않은 채 현재의 감정 및 감각을 바라보면, 사회적 역할이나 타인이 기대하는 모습이 아닌 ‘진짜 자기’를 만나는 것이 가능하다. 부모나 사회의 기대와 자신의 관점을 구분할 수 있는 객관적인 안목을 기를수록, 스스로의 내면에 잠재된 감정과 감각에 집중할수록 ‘참자기’에 보다 가까워질 수 있고, 이로부터 자신의 고유함에 대한 믿음 역시 자라날 수 있다. 그리고 그 믿음이, ‘거짓자기’와 ‘참자기’를 선택할 힘을 실어줄 것이다. 





참고문헌

1) 이지안. (2024). 성격 좋다는 말에 가려진 것들. 한겨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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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7-14 08: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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