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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림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교무실 문 앞에 섰다.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종이 넘기는 소리와 키보드 타자음이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을 자극했다.

그녀는 문고리를 조심스럽게 돌렸다.


스르륵—

낮은 마찰음과 함께 문이 열리자, 송수진이 고개를 들었다.


“하림아?”


교사의 얼굴에는 피로와 당혹감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하림의 눈에 들어온 것은, 책상 위에 던져진 정이서의 생활기록부였다.


“시간 괜찮으세요?”


하림은 최대한 예의를 갖춘 말투를 유지하려 애썼다.

송수진은 당황한 듯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무슨 일이니?”


하림은 안으로 들어섰다.

책상 앞에 선 그녀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정이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 말에 송수진의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담담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을 꺼냈다.


“그건 이미… 종결된 일이야. 학교도, 학부모도, 다 그렇게 결론을 내렸고…”

“그 결론에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하림의 말은 단호했다.

잠시 교무실 안에 정적이 흘렀다.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얼어붙은 듯 차가웠다.


“정이서가 왜 그렇게 무너졌는지, 선생님도 알고 있었잖아요.”


하림의 말투는 격해지지 않았지만, 그 속에 억눌린 분노가 묻어났다.


“그 애가 마지막까지 썼던 일기장을… 누가 숨겼는지 저는 알고 있어요.”


송수진은 고개를 저었다.


“하림아, 그건 너희가 알 필요 없는 문제야. 어른들이 판단해야 할 영역이야.”

“그 어른들의 침묵이 한 아이를 죽였어요.”


하림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분명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어요. 사과도, 설명도 없었죠.

그게 과연 정당한 판단이었을까요?”


그 순간 송수진은 눈을 감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미안해. 나는, 너무 무서웠어.”

“정이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었는데도…

내가 나서면 내가 무너질까 봐 두려웠어.”


하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그 눈물은 연민이 아니라, 더는 외면하지 않겠다는 결의로 빛났다.


“그래서 저는 나설 거예요. 지금이라도.”

“진실을 말해야 하니까요. 누군가는 시작해야 하잖아요.”


송수진은 말없이 하림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시선에는 처음으로, 진심 어린 슬픔이 담겨 있었다.

하림은 더 말하지 않았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다시 교무실 문을 열었다.


탁.


닫힌 문 너머로, 송수진은 홀로 앉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속삭이듯 혼잣말을 흘렸다.


“…그 아이가 너라서, 다행이야.”




작가의 말 :

이번 화는 그동안 침묵으로 눌러왔던 진실의 조각이 드러나는 시작점입니다.

윤하림의 용기는 단지 친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마주하기 위한 첫걸음이기도 합니다.

송수진이 가진 죄책감, 그리고 우리가 사회 속에서 외면해온 문제들을 떠올리며 써 내려갔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정이서의 일기장이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그 속에는 무엇이 기록되어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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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6-30 09: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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