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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탐지기는 정말 진실을 가려낼 수 있을까? - 과학과 심리의 경계에 선 수사 기법의 실체
  • 기사등록 2025-07-17 08: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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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이윤서 ]



현대의 범죄 수사는 과학 기술의 발달과 함께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도구가 바로 거짓말 탐지기, 즉 폴리그래프(polygraph)다. 범죄 드라마나 수사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등장하는 이 기계는, 심문 대상자의 신체 반응을 분석하여 진술의 진위를 파악하는 데 사용된다. 하지만 이 장치가 정말로 거짓을 밝혀낼 수 있을까? 아니면 ‘심리학적 신화’에 불과한 것일까?



거짓말 탐지기의 작동 원리


거짓말 탐지기는 말 그대로 ‘거짓’을 탐지하는 장비는 아니다. 대신 심리적 긴장이 신체 반응으로 나타난다는 전제 하에, 심문 대상자의 심박수, 호흡, 혈압, 피부전도 반응 등을 측정한다. 거짓을 말할 때 신체적으로 긴장이 증가하고, 그로 인해 생리적 변화가 나타난다는 가설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반응은 ‘거짓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민감한 질문을 받았을 때, 설령 그 사람이 진실을 말하더라도 불안, 두려움, 수치심, 억울함 등 다양한 감정이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즉, 폴리그래프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닌, 단지 ‘정서적 각성’을 포착할 뿐이다.



심리학자들이 보는 폴리그래프의 문제점


많은 심리학자들은 폴리그래프의 과학적 신뢰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대표적으로 국제심리과학협회(APS)와 미국심리학회(APA)는 수차례에 걸쳐 폴리그래프의 증거능력과 정확도에 문제를 제기해왔다.


실제로 폴리그래프의 정확도는 70~90% 사이로 보고되며, 이는 수사 기법으로는 불안정한 수치다. 특히 거짓 양성과 거짓 음성의 비율이 높다는 점은 위험 요소로 지적된다. 무죄인 사람이 긴장으로 인해 ‘거짓말을 한 것처럼’ 판단될 수도 있고, 반대로 범죄자가 차분함을 유지해 진실을 감출 수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Ekman(2009)은 “사람의 거짓말을 판별하는 데 생리적 반응은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보다는 미세표정이나 비언어적 단서가 더 신뢰할 만하다고 본다.



왜 우리는 여전히 거짓말 탐지기를 믿는가?


그렇다면 과학적으로 불완전한 기계를 왜 아직도 수사기관에서 사용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과학처럼 보이는 장치’가 주는 심리적 압박감 때문이다.


실제로 폴리그래프는 심리적 자백 유도 도구로 효과가 높다. 피의자가 기계 앞에서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곧바로 거짓이 밝혀질 것이라는 믿음이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는 플라시보 효과와 유사한 심리적 기제다. 어떤 도구가 효과가 있다고 믿는 순간, 그 도구는 실제 효과를 갖게 된다.



수사에서의 사용 현황과 법적 한계


현재 미국에서는 일부 주에서 폴리그래프 결과를 보조 증거로 인정하지만, 대다수 법정에서는 독립적인 증거로 활용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2019년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피의자의 동의가 없거나 폴리그래프 결과가 단독 증거로 사용된 경우, 이는 위법수집증거로 간주될 수 있다. 또한 기계 조작 가능성, 수사관의 질문 방식 등 외부 변수가 많다는 점에서, 오히려 수사 왜곡의 위험이 존재한다는 지적도 많다.



최신 연구 동향: AI와 생체정보 분석


최근에는 전통적인 폴리그래프보다 정교한 기술들이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AI 기반 얼굴 분석 시스템은 감정의 미세한 변화를 인식하고, 음성 스트레스 분석 기술은 말의 억양과 속도를 바탕으로 진실성을 평가한다. 2021년 한 연구에서는 음성 인식 기술과 심박수 분석을 결합한 자동화 시스템이 약 85%의 정확도를 보였다는 결과가 있다(Bennett et al., 2021). 하지만 이 역시 표준화의 문제, 윤리적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아 실질적 수사 활용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과학은 진실을 밝히되, 오직 진실은 아니다


거짓말 탐지기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과학의 힘’으로 인식되지만, 그것이 반드시 진실을 가리는 열쇠는 아니다. 범죄심리학은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정과 반응을 해석하는 학문이다. 수사 기술은 이론을 기반으로 발전해야 하며, 기술 자체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는 오히려 정의를 왜곡시킬 수 있다. 진실은 기계가 아닌, 사람의 말과 맥락 속에 있다. 그리고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건,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참고문헌

1. Granhag, P. A., & Vrij, A. (2020). Deception detection: Current challenges and cognitive approaches. Wiley Interdisciplinary Reviews: Cognitive Science, 11(5), e1543. https://doi.org/10.1002/wcs.1543

  1. 2. Vrij, A., Mann, S., & Fisher, R. P. (2021). Improving deception detection by strategic interviewing. Journal of Applied Research in Memory and Cognition, 10(2), 251–258. https://doi.org/10.1016/j.jarmac.2020.10.006

  2. 3. Hartwig, M., & Bond, C. F. Jr. (2023). Cognitive approaches to lie detection: Research and practice. Current Directions in Psychological Science, 32(1), 25–32. https://doi.org/10.1177/09637214221140788

  3. 4. Kim, J. H., & Park, H. J. (2020). 심리학 기반 범죄수사 기법에 대한 비판적 고찰: 거짓말탐지기의 활용과 한계. 한국심리학회지: 법과 심리, 11(1), 37–58. https://doi.org/10.21525/kjlp.2020.11.1.37

  4. 5. Lee, S. Y., & Choi, E. J. (2021). 과학수사에서의 심리학적 기법 적용과 윤리적 쟁점: 폴리그래프와 피의자 심문 사례 중심으로. 형사정책연구, 32(3), 89–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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