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윤하림은 교무실 문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닫히는 소리가 무겁게 울렸다.
책상 위에 흩어진 서류들, 어지럽게 널린 기록들.
그 틈에서 낯익은 이름이 하림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고윤태...”
하림은 손끝으로 이름을 짚었다.
파일을 펼치자, 고윤태의 상담 기록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정신적 불안, 가정폭력, 자해 시도, 그리고 상담 중단.
그 아래, 윤설화의 이름도 있었다.
“설화 언니가... 이걸 알고 있었던 거야?”
하림은 숨을 삼켰다.
책상 서랍을 열자, 하나의 노트가 튀어나왔다.
노트엔 담임의 필체로 쓰인 기록이 빼곡했다.
〈학생들의 감정 반응 기록〉
〈고윤태 - 불안, 공격성, 죄책감 반복적 표현. 정이서에 대한 집착 확인.〉
〈정이서 - 윤태에게 두려움 느낀다는 진술. 그러나 반복적 침묵.〉
하림은 손이 떨렸다.
“이건... 선생님이 다 알고 있었던 거잖아.”
문득, 교무실 안쪽 캐비닛에서 낡은 테이프가 눈에 띄었다.
‘6월 14일, 면담기록’이라 적힌 태그가 붙어 있었다.
하림은 테이프를 들고 교무실 뒤쪽 작은 라디오에 넣었다.
딸깍,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테이프가 돌아갔다.
녹음된 목소리는 담임의 낮은 톤이었다.
〈고윤태, 요즘 잘 지내고 있니?〉
〈...선생님, 전 가끔 이서가 제 안에 들어오는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말이니?〉
〈그 애가... 날 무시해요. 내가 아무리 잘해줘도... 날 안 봐요.〉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니?〉
〈지워버리고 싶어요. 그 얼굴을. 그 존재를.〉
그 순간, 테이프는 멈췄다.
하림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윤태가 했던 말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서가 두려워했던 이유.
윤태의 그림에서 사라졌던 얼굴들.
모든 것이 퍼즐처럼 맞춰졌다.
그리고, 그 퍼즐의 중심엔 담임이 있었다.
그는 관찰자도, 중재자도 아니었다.
침묵 속에 방조한 자.
학생들의 고통을 지켜보기만 했던 사람.
하림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꾹 눌렀다.
“이걸 모두... 드러내야 해.”
그녀는 테이프와 기록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교무실 문을 열며 말했다.
“이제, 침묵은 끝이야.”
작가의 말 :
정적은 때때로 말보다 더 큰 죄를 낳습니다.
하림이 드디어 진실의 가장자리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이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그녀는 더 많은 용기와 싸움을 마주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 화에서, 하림의 고군분투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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