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교무실 문이 다시 닫히자, 정적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윤하림은 텅 빈 공간을 둘러보았다.
책상 위엔 누군가 급히 남긴 듯한 서류들과 반쯤 닫힌 서랍들,
그리고 벽시계는 여전히 묵묵히 시간을 쪼개고 있었다.
한때 이곳은 선생들의 권위가 숨 쉬던 장소였다.
그러나 지금은 권위가 아닌 공포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고윤태가... 여기 있었던 거야.”
하림은 책상 앞에 멈춰 서서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것은 오래된 필통, 낡은 이름표,
그리고 구겨진 편지지였다.
편지지의 글씨는 잉크가 번져 있었지만,
하림은 눈을 부릅뜨고 문장을 읽어나갔다.
“나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아. 내가 본 그 날의 장면을.”
순간, 책상 아래에서 스산한 기척이 느껴졌다.
하림이 천천히 몸을 숙이자,
그곳에는 낡은 교복을 입은 누군가의 뒷모습이 있었다.
그 모습은 분명... 정이서였다.
“이서...?”
그녀는 돌아보지 않았다.
단지 허공을 응시한 채, 중얼거렸다.
“그 애는, 거기 있었어. 우리가... 아무것도 몰랐던 그때부터.”
“무슨 말이야? 누구 말하는 거야?”
“눈을 감아야 보여. 그래야 그 애가 온전해져.”
정이서는 고개를 천천히 돌렸고, 그 얼굴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눈 한 쪽은 텅 비어 있었고,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하림은 뒷걸음질쳤다.
“...넌... 살아 있는 거 맞지...?”
그 순간, 교무실 문이 덜컥 열렸다.
“하림아!”
달려 들어온 민수와 정우가 하림을 붙잡았다.
“혼자 들어오면 어떡해! 위험하잖아!”
하림은 멍하니 이서를 가리켰지만,
두 사람의 시선에는 이서가 보이지 않는 듯했다.
“이서가... 방금 여기 있었어. 진짜야.”
민수는 무거운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여긴... 죽은 애들의 기억이 쌓인 공간이야. 우리가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이미 경계는 무너졌어.”
정우는 조용히 교탁 위에 있던 낡은 공책 하나를 펼쳤다.
그 속에는 여러 학생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 중간엔 선명하게 이렇게 적혀 있었다.
[윤설화 - 침묵 유지]
[정이서 - 실종]
[고윤태 - 사망 (미확인)]
[윤하림 - 위험 인물]
하림은 종이에 적힌 자신의 이름을 보고 숨을 삼켰다.
“내가... 왜...”
정우는 입을 굳게 다문 채, 하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우린, 이 교실에서 도망칠 수 없을지도 몰라.”
작가의 말:
36화에서는 다시 무대가 교무실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모든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는 분위기죠.
하림의 이름이 적힌 목록, 그리고 '위험 인물'이라는 정체불명의 기록...
정말 그녀가 모르는 진실이 아직 있는 걸까요?
37화에서는 ‘윤설화’와의 대면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긴장감을 놓지 말고 다음 화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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