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우
[ 한국심리학신문=채진우 ]
우리는 보통 ‘행복’이라는 말을 들으면 긍정적인 감정부터 떠올린다. 웃음, 만족감, 따뜻함, 평온함 같은 단어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행복’이라는 감정 자체가 낯설고 어색하며, 때로는 두렵고 불안한 감정일 수 있다. 기뻐야 할 순간에 도리어 불안을 느끼고, 좋은 일이 생기면 왠지 모를 불행을 예감하게 되는 사람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행복을 거부한다. 이처럼 행복을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심리 상태를 심리학에서는 ‘체로포비아(Cherophobia)’라고 부른다.
‘체로포비아’는 공식적인 정신질환 명칭은 아니지만, 상담과 치료 현장에서는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이 문제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과거 상처가 깊거나, 자존감이 낮거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강한 사람일수록 이러한 증상을 보이기 쉽다. 문제는 이 감정이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키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듯 보여도, 내면에서는 행복에 대한 불신과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체로포비아를 겪는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기쁜 일이 있으면 반드시 안 좋은 일이 따라온다.” 이 말은 단순한 기우가 아니라, 그들의 삶에서 실제로 반복된 경험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웃었던 기억 뒤에 갑작스러운 이별이 찾아왔던 경험, 열심히 준비해서 성과를 냈지만 주변의 시기와 질투에 시달렸던 경험, 혹은 한순간의 기쁨 뒤에 찾아온 실패와 좌절 등이 반복되면서, 뇌는 ‘행복 = 위협’이라는 인식을 형성하게 된다.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기쁜 감정을 억누르려 하며, 행복한 순간에도 “이게 오래 가지 않을 거야”라는 불안감을 느낀다. 그런 감정은 마치 방심하다가 큰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경고처럼 느껴진다. 기쁨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고 경계하는 태도로 ‘행복’을 감시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감정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 굳어진다는 점이다. 반복된 회피는 뇌와 감정의 연결 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결국 어떤 즐거운 일이 생겨도 스스로를 자제시키고, 타인의 축하에도 진심으로 웃지 못하게 된다.
체로포비아는 그 자체로 고립된 감정이 아니다. 그 뒤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자책, 불안, 죄책감, 그리고 때로는 분노나 슬픔이 뒤섞여 있다. 많은 경우, 이들은 스스로를 행복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나는 그만큼 노력하지 않았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은데 내가 기뻐도 될까?”라는 생각은 자신을 끊임없이 억제하고, 감정을 숨기도록 만든다.
이러한 감정은 어릴 적 환경이나 가족 분위기와도 연관된다. 어린 시절부터 감정 표현에 제약을 받았거나, 성취를 해도 무조건 더 높은 목표를 요구받았던 이들은 ‘기쁨을 느끼는 법’ 자체를 배우지 못한 채 자란다. 또한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잠시의 행복에 만족하지 못하고, “아직 부족하다”는 자기비판에 사로잡혀 진정한 기쁨을 밀어낸다.
이처럼 체로포비아는 단순히 “행복이 두렵다”는 감정을 넘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제,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문제, 그리고 삶의 안전감을 느끼지 못하는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체로포비아는 일종의 심리적 방어기제다. 삶의 불안과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감정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단은 단기적인 보호일 수는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삶의 기쁨과 의미를 앗아간다. 그렇기에 체로포비아는 반드시 회복의 과정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행복이 두렵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이미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작은 행복부터 조금씩 경험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감정을 느껴보는 것부터 시작해도 된다.
또한 인지행동치료(CBT)와 같은 심리 치료법은 체로포비아의 회복에 매우 효과적이다. 왜곡된 사고 패턴을 점검하고, 행복에 대한 비합리적인 두려움을 현실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점차 감정의 균형을 되찾을 수 있다. 더불어 상담을 통해 자기 수용과 자기 연민을 배우는 것도 중요한 치유의 과정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행복한 감정은 결코 위험한 것이 아니며, 그것은 내 삶의 일부가 되어도 괜찮다’는 믿음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감정은 억제할수록 더 커지며, 외면할수록 더 깊이 잠긴다.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에게 따뜻함을 허락하는 연습이 체로포비아를 극복하는 열쇠다.
체로포비아는 보이지 않는 감정의 벽을 만들어 사람과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하고, 삶의 순간들을 무채색으로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 그 자격은 노력으로 증명하지 않아도,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주어지는 것이다.
행복을 느끼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용기는 단번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연습하며 길러진다. 아주 사소한 기쁨에도 마음을 열어보는 것, 웃음을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행복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감정이다. 체로포비아, 그 감정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걸음은 그저 ‘나도 괜찮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속삭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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