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지하실의 불빛은 흐릿하게 떨리고 있었다.
깨진 형광등이 불규칙하게 깜빡이며,
공간 전체에 불안과 긴장을 증폭시켰다.
윤설화는 숨을 죽인 채 벽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녀의 손엔 낡은 스케치북이 들려 있었고,
그 위에는 장하율의 이름이 적힌 페이지가 찢겨 있었다.
그 순간, 무너진 철제 캐비닛 사이에서 누군가의 신음이 들려왔다.
“...하림...”
설화는 귀를 의심했다.
분명 장하율의 목소리였다.
“하림, 그만해... 제발...”
설화는 떨리는 손으로 손전등을 들어 소리가 난 쪽을 비췄다.
그리고 그곳엔, 온몸이 묶인 채 피투성이가 된 윤태가 있었다.
그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어 있었고,
눈은 허공을 향해 떨리고 있었다.
“윤태?!”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설화야... 도망쳐... 하림이... 이건 다... 그녀가...”
그 순간, 등 뒤에서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설화의 목덜미에 닿았다.
“그를 불쌍하다고 생각해?”
윤하림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그런 얼굴을 하고도 네가 진실을 안다고 생각해?”
설화는 천천히 돌아보았다.
하림의 눈은 텅 빈 공허 속에서 검붉은 광기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동자 속엔 확실한 고통의 흔적도 남아 있었다.
사랑과 증오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하림아… 나는 네 편이야.”
그 말에 하림의 손이 멈칫했다.
그리고 떨리는 입술이 열렸다.
“...내 편이라면 왜 날 몰아세웠어. 왜… 날 구하지 않았어...”
그녀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하지만 그 눈물은 단지 슬픔만을 담고 있지 않았다.
분노, 배신, 그리고 마지막 남은 인간성의 파편이 섞인 눈물이었다.
정이서가 지하실로 뛰어들어왔다.
“설화야!”
이서의 눈이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그녀는 주저 없이 설화 앞에 섰다.
손에 쥔 핸드폰의 플래시가 번쩍이며 하림의 눈을 찔렀다.
“하림, 멈춰! 우리가 알아. 우리가 다 알고 있어. 너 혼자가 아니야.”
하림의 칼끝이 흔들렸다.
“너희가 뭘 알아? 내 목소리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어. 아무도.”
“아니.”
설화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이제부터 들을 거야. 널, 그리고 그 날의 진실을.”
그 말에 하림의 손이 점점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너진 윤태의 신음이 다시 공간을 채웠다.
“...살고 싶어…”
긴 침묵 끝에, 하림의 칼이 손에서 떨어졌다.
피가 떨어지는 소리만이 지하실에 메아리쳤다.
작가의 말 :
하림의 내면이 가장 큰 전환점을 맞이한 회차였습니다.
우리가 ‘악’이라고 믿는 존재도,
그 안엔 누군가가 외면했던 절박한 목소리가 숨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앞으로의 이야기는 진실의 중심으로 다가가며 더 충격적인 반전과 마주하게 될 겁니다.
항상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화에서, 무너진 교실의 진짜 목소리를 함께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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