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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아… 괜찮아?”


정이서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교실 안에 울린다. 

윤하림은 여전히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창밖에는 어릴 적 하율과 함께 웃으며 놀던 운동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곳이 싸늘하게 식은 기억의 무덤처럼 보였다.


“괜찮지 않아.”


하림의 입에서 나온 말은 냉정했다. 

그리고 단호했다.


“나는 계속 괜찮은 척해왔어. 엄마 앞에서도, 친구들 앞에서도. 그런데… 더는 안 되겠어.”


정이서는 조심히 다가갔다. 

그녀의 손끝이 하림의 어깨를 스쳤다. 

하림은 그대로 고개를 돌려, 이서를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엔 슬픔과 분노, 그리고 기묘한 해방감이 뒤섞여 있었다.


“이서야… 네가 없었으면, 난 정말 끝까지 무너졌을지도 몰라.”

“…우린 서로 붙잡고 있는 거야. 혼자선 못 버티니까.”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짧은 정적이 흐른 후, 하림은 이서에게 조심스럽게 노트를 내밀었다.


“이건… 고윤태가 남긴 스케치북 일부야.”


노트에는 찢긴 흔적이 있었고, 검은 펜으로 흐릿하게 그려진 ‘지워진 얼굴들’이 있었다. 

얼굴은 모두 표정이 없었다. 

눈과 입이 없는 이형(異形)의 그림들. 

그리고 그 아래, 손글씨로 써 내려간 말.


“모두가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아이는 죽은 거야.”


정이서는 숨을 삼켰다.


“이건… 윤태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진실이었을까?”

“그건 모르겠어. 하지만 적어도, 그가 끝까지 후회했다는 건 사실이야.”


하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이제 이 침묵을 끝내려고 해. 더는 혼자 아파하지 않겠어. 

그리고… 우리 모두가 무엇을 외면해왔는지, 말할 거야.”


윤설화는 상담실에서 고개를 들었다. 

책상 위에는 윤하림의 상담 기록이 펼쳐져 있었고, 

곁에는 하율의 진술문 사본이 놓여 있었다.


“하림아… 네가 결국 이겨냈구나.”


그녀의 눈가에 물기가 맺혔다.

곧이어 교실 문이 열리고, 정이서와 윤하림이 함께 들어왔다. 

설화는 따뜻한 미소로 그들을 맞이했다.


“이제, 너희의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줄 준비가 된 거니?”


하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선생님. 저희가 겪었던 일, 그리고 외면당했던 진실을… 이제는 말할 거예요.”


그 순간, 누군가 복도를 달려와 급히 문을 열었다. 

놀란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문쪽을 향했다.


“큰일 났어요! 학교 안에 윤태의 마지막 영상이 공개됐어요!”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 누구도 침묵하지 않았다.




작가의 말 :

40화까지 함께 달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화는 하림의 내적 갈등이 외적으로 전환되는 시점이자, 

《침묵의 교실》의 ‘침묵’이 깨지는 상징적인 장면이었습니다.

하림, 이서, 설화, 그리고 아직 남은 비밀들이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곧 펼쳐질 마지막 퍼즐까지, 계속 함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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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7-15 09:4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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