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교실 안은 숨죽인 적막에 잠겨 있었다.
윤태가 무너진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있었고,
윤설화는 그의 앞을 막아선 채 지켜보고 있었다.
핏자국이 흩뿌려진 교복 셔츠와 굳게 다문 입술,
그녀의 두 눈은 끝내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왜 이제야 말하려 한 거야… 설화야.”
윤태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고통스러울 정도로 갈라져 있었다.
설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멈춘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계산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하림과 이서가 그의 뒤에 서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서가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해요, 윤태. 이건…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니었어요.
당신이 만든 악몽이었잖아요.”
하림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오래된 소형 녹음기가 들려 있었다.
“이걸 학교 방송실에서 발견했어.
네가 남긴 마지막 녹음… 너의 목소리, 그리고 너의 죄.”
윤태는 녹음기를 보자마자 몸을 움찔했다.
그건 오래전 자신이 조작한 사건의 증거였다.
그가 친구를 밀어 넣은 어두운 구덩이, 그 안에서 들려온 숨죽인 비명.
그리고 그의 비겁한 침묵.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 정말로…”
“그건 중요하지 않아.”
설화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의도가 아니라, 결과가 사람을 망가뜨리는 거니까.”
하림은 녹음기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교탁 뒤에 숨겨진 노트를 꺼냈다.
윤태가 조작한 수많은 정황들, 아이들을 조종하고,
증거를 왜곡해 진실을 덮은 흔적들이 적혀 있었다.
그 순간, 학교 전체 방송이 켜졌다.
삐─
“여기는 3학년 1반 윤하림입니다.
지금부터 여러분께 꼭 들려드려야 할 이야기, 그리고 목소리를 전하겠습니다.”
녹음기의 플레이 버튼이 눌리는 소리.
이어지는 윤태의 목소리.
감정 없이 늘어놓는 사실들, 조작과 조종,
그리고 마지막엔 떨리는 음성으로 덧붙인 한 마디.
“…난 이제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안다.
모두에게, 특히 설화에게… 미안하다.”
정적.
방송이 끝난 후, 교실엔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설화는 고개를 숙인 채, 윤태에게 다가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제… 진실을 마주할 수 있겠니?”
윤태는 눈을 감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 순간, 창밖에서 부는 바람에 커튼이 흩날리며 교실에 아침 햇살이 스며들었다.
긴 악몽이 끝나고, 마침내 아침이 온 것처럼.
작가의 말 :
이번 화는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침묵의 대가’에 대한 부분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윤태는 더 이상 침묵 속에 숨을 수 없고, 하림과 설화, 이서의 용기는 오랜 거짓을 무너뜨립니다.
다음 화부터는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며 각 인물의 감정 정리와 사건의 사회적 파장까지 다룰 예정입니다.
긴 여정 끝까지 함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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