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교실 한가운데, 바닥에 흩어진 종잇조각들 위로 기묘한 정적이 흘렀다.
깨진 유리창 틈으로 스며든 바람이 종이를 휘날리며,
어딘가로부터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속삭임이 모두의 귀를 때렸다.
“도망쳐... 도망쳐야 해...”
윤하림은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두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방금 전, 정이서가 본 교무실의 CCTV 영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모든 시작은... 선생님이었어.’
“...이제 숨길 수 없어.”
하림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윤태, 넌 진실을 알고도 가만히 있었지.
이서가 당하고, 설화가 무너지던 그 순간에도.”
윤태는 고개를 들었지만, 그의 얼굴은 공허했다.
“나는... 난 그냥... 무서웠어.”
“무서웠다고?”
하림의 목소리에 분노가 섞였다.
“우리가 얼마나 오래 그 공포 속에 있었는지 알아?
네가 침묵할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죽어갔어.”
정윤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고, 눈동자는 깊은 죄책감에 젖어갔다.
설화는 조용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낡은 노트 한 권이 들려 있었다.
“이건... 그날의 기록이야.
우리가 무시해왔던, 혹은 외면해왔던...
선생님의 음성 녹음 파일이 여기 있어.”
그 순간, 하림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걸 어떻게...”
“이서가... 남겼어.
너에게 전하라고.”
이서가?
하림은 숨을 삼켰다.
그녀는 방금까지 자신이 붙잡고 있던 분노와 죄책감의 실마리가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설화는 조심스럽게 녹음기를 틀었다.
“아이들은 나를 두려워해.
그건 곧 존경의 또 다른 형태야... 내가 만든 규율 안에서만 그들은 살아남을 수 있어.”
그 기괴한 음성은 교실 전체를 휘감았다.
차갑고 기계적인 목소리.
그 속에는 이상하게 왜곡된 교육관과 병든 권위의식이 담겨 있었다.
윤태는 무릎을 꿇었다.
“...내가 도와줄게. 늦었지만, 이제라도... 끝내자.
하림, 설화, 이서... 그리고 너에게 사과하고 싶어.”
그의 말에 하림은 한참을 침묵했다.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좋아. 하지만 네 역할은 끝까지 다 해야 해. 도망치지 마.”
한 줄기 햇빛이 교실 유리창을 뚫고 들어오며, 하림의 얼굴을 비췄다.
그녀의 눈동자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이제, 복수는 감정이 아닌 정의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싸움은, 이젠 진짜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작가의 말 :
하림과 윤태의 갈등이 마침내 폭발하는 회차였습니다.
이제 이 이야기는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방치된 진실과 그에 맞서는 청춘들의 이야기로 확장되고 있어요.
다음 화에선 하림과 설화, 윤태, 그리고 돌아온 이서가
본격적으로 사건의 실체를 세상에 드러내는 준비에 들어갑니다.
과연 이들은 무사히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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