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하림은 윤태를 응시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손끝에 남아 있는 따뜻한 피가 여전히 그녀를 인간으로 붙잡고 있었지만,
내면의 고요한 분노는 파도처럼 그녀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네가 진짜로 원했던 건 뭐였어?"
하림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교실의 모든 공기를 압도했다.
윤태는 더 이상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의 눈은 땅바닥의 먼지 하나까지 쳐다보며 도망치고 있었다.
무릎 꿇은 채 숨을 헐떡이는 그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포식자가 아닌, 스스로 먹혀버린 사냥감 같았다.
"나는... 나는 그냥 무시당하기 싫었어.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라는 걸... 모두가 알게 만들고 싶었어…"
그의 말은 거칠게 새어나왔다.
뺨을 타고 흐르던 피는 말라붙었고, 그의 두 눈엔 그토록 원하던 인정이 아닌,
철저한 고립이 남아 있었다.
설화는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다가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우리가 널 무시한 게 아니라… 네가 스스로 우리를 밀어낸 거야.”
윤태의 어깨가 움찔였다.
그 말은 칼보다 날카롭게 그의 귓가를 찔러댔다.
정이서는 조심스레 하림의 팔을 붙잡았다.
그녀의 손엔 미세하게 떨림이 있었다.
“하림, 이제 됐어. 그만하자.”
하지만 하림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마치 현실과 자신 사이의 마지막 경계를 짓는 것처럼.
"나는 너를 용서하지 않아. 하지만…"
하림은 윤태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너에게 내 감정을 허비하지 않을 거야."
그녀가 등을 돌리는 순간, 윤태는 짓눌린 듯 바닥에 고꾸라졌다.
하림의 마지막 말은, 모든 복수보다도 더 깊게 그를 무너뜨렸다.
그날 오후, 경찰이 도착했고 윤태는 연행되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침묵의 교실’이라 불리던 3학년 2반의 정적은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서로를 마주보기 시작했고,
조용했던 복도엔 미세한 웃음소리가 섞여 흘렀다.
그러나 하림의 눈빛은 여전히 어딘가 멀리 있었다.
그날의 교실, 그리고 그 안에 남겨진 피의 잔영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작가의 말 :
이번 화는 윤태와 하림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정리되는 전환점이었습니다.
복수와 분노, 용서와 무시 사이에서 하림이 선택한 감정은 ‘단절’이었습니다.
한 사람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건, 때때로 감정조차 주지 않는 ‘침묵’일지도 모릅니다.
다음 화에선 하림과 친구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치유를 시작합니다.
계속해서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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