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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한가운데, 

피비린내가 아직 가시지 않은 공기 속에서 하림은 단단히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그녀의 손끝은 바르르 떨리고 있었고,

 흘러내린 팔뚝 위의 상처 자국이 고통보다는 분노의 흔적으로 더 선명했다.


“왜… 왜 그랬어.”


하림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교실 벽에 부딪혔다. 

그 목소리는 외침이 아니었고, 나직한 속삭임이었으나, 

그 무엇보다 날카로웠다. 

마치 정맥을 따라 들어오는 유리조각처럼.

윤태는 말없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어깨는 처참하게 축 늘어졌고, 얼굴엔 피와 눈물 자국이 엉겨붙어 있었다. 

그는 감히 하림을 쳐다볼 수 없었다. 

고개를 든 순간, 

하림의 눈동자에 떠오른 설화의 그림자가 자신을 완전히 무너뜨릴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네가 한 행동, 그저 강해지고 싶어서였어?”


그의 몸이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아니…” 

윤태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살고 싶었어.”

“그 말이 네겐 핑계가 되니?”


하림은 숨을 몰아쉬며 윤태에게 다가갔다. 

그가 움찔하며 뒷걸음질 치려 했지만, 

이미 무릎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서는 그런 하림의 팔을 살짝 붙잡았지만, 

말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림아…” 


이서가 조용히 말했다. 


“그만하자. 윤태도… 상처받았어.”

“상처?” 


하림이 조용히 웃었다. 


“…상처는 설화가 받았지. 그 아이는 죽었어. 사라졌다고.”


그 말에 교실은 더욱 싸늘해졌다. 

누가 선풍기를 껐던가. 

그 작은 바람마저 허락되지 않는 공간에서, 하림은 조용히 손을 펼쳤다.

그녀의 손에는 설화가 마지막까지 지니고 있었던, 

단추 하나가 놓여 있었다. 

빨간 피가 말라붙어 거무스름해진 단추. 

윤태의 시선이 그 단추 위에 멈췄고, 

그의 눈에 다시금 눈물이 고였다.


“난… 그날 그냥 고개만 돌렸으면 됐는데…”


그제야 윤태가 입을 열었다.


“그날, 설화가 울고 있는 거 알았어. 

뒤에서 누가 조용히 괴롭히고 있는 것도 눈치챘고… 

하지만 그냥,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어.”


그의 목소리는 갈라졌고, 손은 바닥에 닿은 채 떨리고 있었다.


“…그게 죄라는 거, 이제 알아.”


하림은 그의 말에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복잡한 감정이 그녀의 눈을 스쳐갔다. 

분노, 슬픔, 그리고 이해. 

러나 끝내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피해자인 동시에 방관자였어. 

설화를 구할 수 있었던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었던 거야.”


이서가 덧붙였다.


“지금이라도 진실을 말해야 해. 

그래야… 설화가 정말 사라지지 않을 수 있어.”


그 말에 윤태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은 움직임이, 마치 오랜 겨울을 뚫고 피어나는 새싹 같았다.

바로 그때, 교실 안에 다시 종소리가 울렸다.


—딩동댕—


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무겁고, 의미심장하게 울렸다. 

마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 혹은 오래된 침묵의 끝을 고하는 듯.

윤태는 교실 창문 너머를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제, 도망치지 않을게…”


하림은 그런 윤태를 잠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교실 밖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그 뒤를 이서가, 그리고 윤태가 따라 걸었다. 

세 사람의 발걸음이 겹쳐질수록, 

오래도록 닫혀 있던 진실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작가의 말 :

이번 화는 저에게도 쓰는 데 꽤 시간이 걸린 화였습니다.

하림의 분노, 윤태의 죄책감, 그리고 이서의 따뜻한 중재…

이 교실 속 감정의 균열이 조금씩 드러나며, 다음 화부터는 본격적인 진실의 폭로가 시작됩니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


《침묵의 교실》은 이 질문을 던지며 끝까지 독자 여러분을 긴장하게 만들 겁니다.

항상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화도 기대해 주세요. 더 깊은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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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7-21 09:10:00
  • 수정 2025-07-21 15:5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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