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
시도 때도 없이 인중 위로 묽은 피가 흘러내린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데, 어째 물의 농도와 다를 바가 없다.
아기에게 보내야 할 혈액이 많이 필요하니 혈류량은 늘어나는데
막상 피의 양은 많지 않아 농도가 옅어진 탓이다.
“엄마는 얼굴이 왜 노란색이야?”
핏기가 없으니 아이 눈에 내가 노랗게 떠보이나보다.
몸도 문제지만 뇌로 갈 혈액은 더 없다. 쉬운 단어도 생각나지 않고 책을 읽어도 오분 안에 메슥거려 속이 뒤집어진다.
커다란 엉덩이로 뒤뚱뒤뚱 걷는 뒤태는 우스꽝스럽다.
몸도 엉망, 머릿속도 엉망, 바닥에 내팽개쳐진 자존감은 어디서 주워 올려야 할까.
“엄마가 되는 일은 대단한 일인 데다 누구나 하는 일인데,
뭐 그렇게 우울해하고 그래. 금방 다시 돌아올걸”
호르몬은 감정을 들쑤셔놓고 몸속의 장기가 땅 속으로 꺼지는 듯한 마이너스 체력은
무기력을 가중시킨다.
온전한 나로서의 삶을 하루에 한 시간도 살 수 없음에 겨우 붙잡아 두었던 자아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혼자 있고 싶다, 혼자 있고 싶다, 혼자 있고 싶다’
한 사람의 몸에 두 명의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혼란스럽다.
왜 자꾸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했던 지난 9개월을 이제야 이해했다.
임신기간 동안 나는 두 사람으로 살았구나.
온전히 다시 혼자로 살 수 있으려면 몇 년이 걸릴까,
그동안 나는 잘 버틸 수 있을까 두렵다.
그 후에 다시 무너진 자아를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 후로도 영원히 자신을 찾지 못하고 자기중심 없이 타인의 가치와 관심만 찾아다니는,
가족들에게 외면받는 엄마 세대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잔소리’로 표현되는 타인 중심의 의사소통만 남은 아줌마들은
결국 자식을 위한 희생의 잔여물임을 잘 알고 있기에.
참 억척스럽고 자기 계발 따위는 관심 없이 차려입고 모임만 찾아다니는 아줌마들은
결국 다시 자아를 찾지 못했기 때문임을 잘 알고 있기에.
출산 전후의 우울이 사치스럽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 우울이 나를 잃지 않게 하는 한가닥 버팀목이 되어주었으면 한다.
최대한 빨리, 아이가 정서적으로 독립하는 그 날 온전히 나를 찾을 수 있도록,
타인의 삶에 잔소리나 얹으면서 사는 쓸모없는 인생이 되지 않도록.
내가 얻고자 하는 삶의 가치가 가정의 중심이 되도록.
우울증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시선들도 많다.
그렇게 쳐져 있을 시간에 일어나서 뭐라도 하면 되지,
죽을 병 걸린 것도 아니고 참 답답하네, 생각하기 쉽다.
우울증은 감기와 같다.
면역력이 떨어진 몸에 들어온 바이러스를 죽이려고
몸에서 열이 나고 콧물을 흘려대는 것처럼,
약해진 정신을 다시 다독이려고 앓고 지나가는 증상이다.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감기같은 증상이지만,
임신 출산을 겪는 여성들에게는 더 어렵고 긴 시간이 된다.
몸의 변화와 삶의 방식까지 변화해버리는 이 긴 터널 내에서
얼마나 잘 앓고 지나갈 것인지가 관건일 터.
이틀에 하루는 몸이 부서져도 기어코 글을 들여다본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기에.
부른 배를 부여잡고 절대로 나를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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