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타인의 아픔을 객관화하고 분석하려 애쓰면서 살아왔다. 동정은 선량한 나를 합리화하기 위한 감정이라고, 과도한 선행은 천국 갈 수 있는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욕심처럼 쌓아두는 돈다발 같은 것이라고. 내가 열심히 살고 내 일에 최선을 다하면 좋은 에너지를 내뿜음으로써 나 나름의 선행을 세상에 건네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분이야 어쩌겠냐만은, 남아있는 친구의 마음이 어른거려 가슴이 옥죄어 온다. 옆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내 손을 잡고 방방 뛰며 놀고 있는 아이 얼굴이 흐릿하다. 이런 건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하나. 텔레비전을 켜 주고 부엌으로 도망쳐버렸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어른의 마음을 설명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아이는 하늘나라에 가기만 하면 천사들과 뛰놀며 아프지 않게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것도 이곳에서 열심히 바르게 살아야 할 수 있는 일이란다, 아가.


20대, 친구를 만나 술자리를 같이 하고 웃고 떠들던 시기에 우리는 피어나는 꽃만 볼 줄 알았다. 아프고 무너지는 삶의 굴곡들을 함께 하리라 예상치 못했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아픔을 겪고 서로를 통해 위로받는다. 같이 웃어주고 울어주면서 내 삶을 다시 토닥인다. 이렇게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내가 일어났던 것처럼 너도 일어서리라 믿는다고.


언젠가 타인의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해주려고 애쓰던 내가 떠오른다.



"어머니, 아이가 힘들게 하더라도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멋대로 날뛰는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연습을 하셔야 합니다. 이런 규칙과 루틴을 따라주세요"



그곳에 공감과 이해는 있었을까. 지금에 와서 많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존스홉킨스 병원에 교육받기 위해 가서 본 심리치료의 현장은 더 차가웠다. 단단한 철로 만들어져 쭉 늘어선 방들. 방 안에는 통제가 필요한 치료 대상들이 있었고, 모든 것이 하얀 옷을 입은 치료사들을 통해 통제당했다. 그것으로 표면적인 문제를 분석해 없앨 수는 있을지언정 사람 냄새는 없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멋대로 날뛰는 감정과 분노를 대면해보고 그 이면에 작게나마 숨어있는 행복을 찾기 위함이라면, 절망도 고난도 그때 그때 필요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절망의 순간이라도 함께 아파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믿고 싶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는 점점 가족으로 좁혀지지만, 한때의 친구들이 다시 모일 수 있을까 수없이 아쉬워하지만, 빛나는 시기를 함께 했던 우리는 결국 함께 아파하며 같이 늙어간다. 희미한 빛이라도 잡고 언젠가 다 같이 다시 모이는 날들이 오길 바래본다.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psytimes.co.kr/news/view.php?idx=1316
  • 기사등록 2021-05-25 10:20:04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