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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고단함의 연속이다. 멋지고 예쁜 순간만 포착해 SNS 올리는 남들의 삶은  행복의 연속일 것만 같지만삶이란 누구에게나 고단함과 시련을 안겨준다좋아 보이기만 하던 부럽기만 하던  누군가의 인생도 만나서   기울이며 속내를 듣다 보면  같은 고민과 힘겨움을 짊어지고 간다.

 


그래도 내 아이는 늘 즐겁고 행복한 기억만 가득한 유년기를 보내길 바랬다. 결혼 생각이 없었던 솔로 시절부터 만에 하나 아이를 낳게 되면 티끌 하나 없이 사랑만 듬뿍 받는 삶을 선사해주고 싶었다. 아이는 아이답게, 철없고 밝고 단순하게 자라기를 소망했었다.


그런 나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아프게 태어난 아이는 고통 속에서 자라며 돌도 되기 전부터 우울증을 겪어야 했다. 엄마에게 먼저 안기는 일도, 웃거나 애정을 표현하는 일도 없었다. 영양이 부족해 이가 다 삭을 정도로 양껏 먹지도 못하고 단 하루도 편안히 자 본 적이 없었다. 살아있는 매 순간이 원망스러웠을 테다. 대여섯 살에 엄마나는  하늘나라에서 여기 왔을까?”라는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곤 했다. 먹는 것, 입는 것, 아픔을 참는 것, 일상의 모든 것을 스스로 통제하는 연습을 계속해서 해야 했다. 참 고단함의 연속이다.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고통스럽고 지치는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즐거울 수 있는 것들은 다 해주고 싶었다. 영상에 푹 빠지는 순간에는 모든 것을 잊고 즐거워하기에 남들보다 더 많이 보여주었다.


스스로를 통제하는 연습에 익숙해져 건강 또한 통제되어 가던 8살 무렵, 전처럼 계속해서 유튜브나 텔레비전을 보려고 들었다. 아팠던 아이에게 평생 당연히 허락되었던 일과이기에 별 의식 없이 요구했을 테다. 나는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화가 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영화도 드라마도 보지 않는다. 유튜브는 물론 보지 않고 텔레비전도 내가 먼저 켜는 법은 없을 정도로 영상을 좋아하지 않는다. 영상을 켜 두면 빠져들어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되는데, 그 순간을 견딜 수가 없어서 보지 않는 편이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면 현실과 영화 속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고 너무 깊이 빠져들어서 현실감각을 되찾는데 한참 시간이 걸리곤 한다. 그래서 아이가 보는 유튜브도 참 싫었던 것이다. 단순히 아이가 영상에 중독되는 것을 걱정하는 것보다 더 감정적인 반응이 튀어나왔다.


아이 입장에서는 스스로 자기 관리가 완전히 될 무렵이 되니 원하는 것을 또다시 통제당한 셈이다. 시무룩해진 아이는 말한다.


꽃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아이는 아플 때에 여러 번 ‘세상에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표현들을 했었지만 이렇게나 예쁘게 말하다니,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럼 예쁘게 피자마자 금방 꺾이고 말걸, 아까 네가 꺾은 꽃처럼?라고 했더니 “그래도 괜찮아!!” 란다.


 “금방 하늘나라 가니까!!”


고단한 삶에 얼른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참 많이도 했다. 수천, 수만 번 했던 생각이다. 다 못해내고 떠나면 또 고생하러 와야 한다는 어렴풋한 믿음에 버티던 삶, 어쩌다 두 아이와 남편과 깊은 연으로 엮이고 엮여 이제 마음대로 떠나지도 못하는 삶, 꽃으로 태어나는 게 나았을걸 이란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


이렇게 예쁜 천사 같은 아이의 마음에 오늘도 고단한 삶을 다잡아 본다. 늘 재미있기만 한 삶을 선물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유튜브 시간을 줄이기 위해 공부시간을 늘릴 수밖에 없는 진부한 엄마가 되어야만 하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더 즐거운 일들을 만들어주고 싶다. 유튜브보다 더 재미있는 일은 스스로 만들기 나름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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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5-31 10: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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