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훈
유독 그 해 겨울바람은 매섭게 느껴졌다. 시린 바람에 몸을 움츠리고 싶지 않았지만, 그것은 허사였다. 마음은 공허했고, 생각은 혼란스러웠다. 든든하게 힘이 되었던 온갖 믿음들이 무너지고 있었다. 좋은 결과 내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외침이 몇 해의 종이 쪼가리 시험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고, 결국 소멸했다.
그렇다 그것은 시험을 준비했던, 그리고 실패하고 좌절했던 필자의 이야기다. 학창 시절부터 간절히 그려 왔던 국가와 국민을 위한 봉사를 하기 위한 사명, 청운의 꿈을 위한 시험, 그 결과는 내게 쓰라린 상처와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금으로부터 십수 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주변 동기들이 의아하게 생각했을 만큼, 대학교 1학년 여름 방학 시기부터 신림동 고시촌에 방을 얻어 강의를 들으며 컵닭을 씹으며 다시 고시원에 들어왔다. 이른 시기부터 준비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결국 이룰 꿈을 이룬다는 생각에 가슴 뛰었고 설렜다. 그리고 2년간의 군 생활에서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이해는 부족했지만 간간이 기본서들을 탐독했다.
복학한 후에는 본격적으로 몰입하기 위해 시험 관련 수업을 듣고, 고시반에 들어가 생활했다. 그러던 중 후회 없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림동 고시촌으로 들어갔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어서, 더 독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1년간 휴대폰을 끄고 지냈다. 밤에 착신 기록을 확인하고 급하거나 필요한 연락을 제외하고는 수도하는 사람처럼 홀로 지냈다. 강의를 듣고 정리하고 공부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지루했지만, 누구나 진정으로 원하고 꿈꾸면 다 이루어질 것이라는 일종의 시크릿류의 믿음이 그 시간을 버티는 원동력이 되었다. 독하게 처절하게 공부해서 합격했던 합격기 들을 읽으며, 위안을 찾으며 당연하게 고독함과 스스로 틀에 가두어 밀어붙이는 생활을 감내했다.
그것은 고통이 아니었으며 희망이었다. 몇 번의 시험에 계속 낙방하자, 내가 투자했던 시간과 열정과 노력들이 오히려 부매랑이 되어 내 뒷통수에 꽂혔다. 학창시절부터 10년 정도 꿈꾸던 내 목표가 멀어지고 있었다. 시험삼아 친 것이 아니라, 온 힘을 다해 최선을 다했는데 낙방이 계속되었다.
길은 그것뿐이라고 생각했고, 삶의 방향은 거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좌표는 분명히 그 길이, 방향이 아니라고 하고 있었다. 좌절했다.
나무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 날
얼어버린 손을 녹여주는 따뜻한 온기는 내면에서부터
모든 노력과 믿음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단 하나의 길이라고 생각했던 길이 막혔다. 상황을 탓할 수도 다른 누굴 탓할 수도 없이,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 고시반 책상에서 나와 반대편 계단으로 이어지는 좁은 복도의 양 끝을 천천히 걸었다. 바닥 이외에는 보지 않고 몇 시간 걸었는지 모르겠다. 밖은 이미 어두웠다. 온갖 잡다한 생각들과 씁쓸함이 계속되었다. 길 잃은 두뇌회로는 여전히 방향을 잡지 못했고 답답한 감정은 한치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날따라 복도를 거니는 것에 풀리지 않아 밖으로 나갔다. 늦겨울의 매서운 겨울바람이 오히려 필요했다. 그래서 건물 프론드 앞으로 나가서 큰 나무 옆 벤치로 나아갔다. 흡연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딱히 할 것도 없었지만, 벤치에 앉기는 싫었다. 그저 나무 밑 벤치 주변을 서성였다.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갑자기 한 생각이 떠올랐다. 한 가지 길, 시험 합격만이 내 운명이라고 믿었던 그 생각이 정말 끝일까? 오히려 내가 내 가능성을 너무 좁게만 보고, 내가 세운 절대성에 나를 가두어 버린 것은 아닐까? 이 길은 내 길이 아닐 수 있지만, 내가 생각지도 못했지만 어쩌면 기회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암흑 같던 어둠에 전구 하나가 켜졌다. 기회라는 이름의 희망, 빛이 어둠을 밝혔다.
그리고 필자에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나무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서성였던 나무의 이름은 “기회의 나무”라고 명명되었다.
우리는 언제나 기회의 시야를 넓혀야 한다
자신이 세운 절대성을 알아차리는 것이 핵심
그렇게 필자는 내게 조금의 영감이라도 주는 나무에 이름을 붙이는 다소 이상한 취미가 생겼고, 기회의 나무 덕분에 내 길이 하나라고 규정하고 믿었던 내 자신의 시야가 너무 좁았고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일종의 심리 도식, 즉 스키마Schema처럼 고착화되었던 내 안의 잘못된 도식을 바로잡을 초석이 되었다. 그리고 다른 도전을 시도해 볼 용기가 생겼던 것 같다. 나무에 이름을 붙여주고 난 후, 몇 년이 지나 뒤돌아보니, 역시 내가 세운 절대성은 그저 내가 규정한 심리적 한계와 틀이었고, 나를 옭아매는 기재였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사기업에 양질의 일자리가 많지 않고, 불안정하다는 인식으로 많은 수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2018년도 공시생 규모를 추정해본 조사에 의하면 20~29세 연령 중에서 44만 명, 청년 인구의 6.8%에 이른다고 하며, 30대까지 고려한다면 5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 같다. 2019년 기준으로 국가공무원 일반직 신규 임용자 수가 1만 3천 명이 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필연적으로 많은 수의 청년들이 시험에 불합격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는 합격자들의 스포트라이트만 보기 마련이고 좌절한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좌절이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삶을 우리는 살고 있다.
좌절은 비단 취업 시장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당연하다고 예상하거나, 꼭 이루어야겠다고 생각한 것과 현실의 격차에서 비롯된다. 가령,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예상치 못한 경제적, 신체적 어려움, 인간관계의 실패에서 비롯된 어려움, 예상치 못한 사건사고 등이 포함된다. 우리는 인터넷 유행어가 된 현시창(현실은 시궁창)이란 말까지 어렵지 않게 사용한다. 그리고 혹자는 매일 우리는 세 번의 역경을 이겨내며 살아간다고 하지 않은가? 그만큼 매일매일의 어려움을 견디어 내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로마의 황제이자 철학자인 마르쿠스 안토니누스는 명상록에서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해서 불행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속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사람은 반드시 불행해진다.”라고 언급하였다.
때로는 실패 후, 타인이 바라보는 스티그마가 너무나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핵심은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를 살펴야 한다.
좌절에서 빠르게 벗어나는 의도적인 전략 - 3단계 접근
좌절에서 벗어나는 첫 단계는 아이러니하게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임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남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자신의 마음이 너무 작은 절대성에 갇혀 있지 않은지, 다른 기회는 없는지 탐구해보는 것이다.
스스로 최선을 다했는지 후회가 없으면 좌절해도, 미련 없이 포기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 우리가 그 상황으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 이상 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서면 충분한 것이다. 더 이상 좌절의 화살로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필자도 다시 처절했던 시험의 시기로 돌아간다 해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어서, 후회가 없었다. 미련도 남지 않았다. 그래서 좌절이 스스로 참혹했지만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두 번째 단계는 남의 시선이나 타인의 관점이 아닌, 내 스스로의 마음에 주의를 기울여 집중해야 한다. 미래학도가 제안하는 주의 전략은 내 인식이 얼마나 편협한 것인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자존감을 스스로 무너뜨리라는 것이 아니라, 자존감의 토대를 더 단단한 것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특히나 IT 시대, 기술이 급격하게 변하는 시대에 우리가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정형화된 삶의 루트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빠르게 인지할 수 있다. 만인 만 가지 색으로 우리의 개성을 펼치며 살아가며 다양한 색깔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불과 10년, 20년 전에는 인정받지 못했던 다양한 직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사회 전면에 서고 있다.
세 번째 단계는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내 안의 좁은 절대성에서 인지하고 깨뜨려보자. 알을 깨고 나와 몇몇 감사한 인연에게 지혜를 구하면 다른 기회가 펼쳐질 수 있다. 필자는 당시에 내 안의 좁은 절대성의 어리석음을 인식하고, 학부 시절 재미있게 듣던 수업 교수님께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학업을 조금 더 심도 있게 이어가보는 것으로 결정했다.
정답은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심리적 좌절이 필수인 시대에 살고 있다. 나의 심리적 좌절은 필수인데, 주변에는 언제나 천재의 창의적 성공담과 미담만이 넘쳐난다. 그래서 더 비교하게 되고, 우리는 마음의 상처와 마음의 병에 걸리기 쉽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거의 모든 사람은 좌절과 상처를 겪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 삶은 그 자체로 가능성이 있다. 우리의 삶을 긍정해보자.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알고, 영원한 성공도, 영원한 실패도 결코 없다는 것을 믿어보자. 필자도 여전히 매 순간이 좌충우돌,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마음껏 좌절하고 있는 미래학도이다. 다만, 그러한 좌절의 감정 뒤에는 “기회의 나무” 등 몇몇 나무 친구들을 떠올리며 내 안의 고집과 편견이 얼마나 고착화되었는지, 내 안의 교만과 오만에 대해 떠올리며 부끄러워하게 된다.
다만, 글을 읽는 모든 분에게도 기회와 희망이 마음속에 깊이 파고들어 필자와 같이 나무에 이름을 붙이는 우습지만 쏠쏠한 재미가 있는 취미가 생기기를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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