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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치유는 나의 치유입니다. - 상실과 상처로부터걸어 나가는우리의 시간을 위해
  • 기사등록 2021-06-08 10:5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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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잃고, 나를 잃고 말았습니다.


살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경험하고 고통받게 됩니다. 트라우마는 우리를 한 순간에 차갑고 캄캄하고 막막한 폭풍이 몰아치는 격랑의 한 복판에 밀어 넣는 강한 스트레스 줍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가인 씨는 지난달에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졌습니다. 이 고통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컸습니다. 어쩌면 예정된 이별이었지만 이별에 이르기까지 예상되는 모든 일이 ‘갑자기’ 벌어진 것처럼 혼란스러웠고 내면에서 온갖 부정적인 감정의 집중포화를 맞는 기분이었지요. 사랑했던 사람의 ‘상실’과 관계가 깨어지는 ‘트라우마’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는 중이었지요. 


이별은 매 순간 도처에서 일어나는 보편의 일이지만 그것이 내 일이 되면 우리는 이 강렬한 감정들의 파도 속에서 소외되고 맙니다. 내 고통이 너무 커서 세상과 분리되는 경험을 하게 되지요.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누군가와의 이별이 그 누구에게도 쉬울 리가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과연 내가 그가 없는 이 순간을, 이 하루를 버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고 어떤 힘도 나지 않았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잠도 잘 자지 못하고 밥도 잘 자지 못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서도 온통 그 사람을 생각하느라 지금 여기에 있어도 지금 여기에 있지 못했습니다. 상담실에 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 모든 말들의 다리가 끊어져있었고, 대화를 하다가도 오래 침묵했고 느닷없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세상의 모든 상실을 겪는 듯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은 그녀의 내면세계 속에서는 진실이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어떻게 하면 나아질 수 있을까요?     


누구라도, 또 언제라도 상실과 트라우마에 부서지는 듯한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공감은 상처를 딛고 일어서고 더 단단한 내면을 가지게 도와주는 상처의 연대 막이 되고 그 모든 삶의 고통과 아픔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계속하게 해주는 마음의 등대가 됩니다. 그리고 이런 공감은 몇 가지 조건을 필요로 합니다.    

  

1. 공감의 기다림 

“바로 괜찮아지기를 기대하지 말아요.”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하나는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는 그저 시간이 가진 치유의 힘에 마음을 기대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생각보다 마음을 치유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 있고 그 누구의 도움도 마음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지금은 외롭고 힘들지라도, 시간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치유의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결국 조금씩 우리를 움직여 갈 겁니다.                     

트라우마로 인해 고통받는 분들을 치료하기 위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라는 진단을 내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섣불리 진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우리 내면을 흔드는 힘든 사건 속에 있는 누군가가 바로 일상성을 회복하길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불합리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트라우마의 한 복판에 있거나 이제 막 힘든 상황을 헤쳐 나온 누군가에게 합리적이고 일상적이며 이성적인 반응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힘든 것이 당연하고 그래도 괜찮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어떤 일 때문에 지금 당장 예전처럼 무언가를 집중해서 할 수 없다고 해도, 어떤 힘도 나지 않아서 주저앉아있다고 해도 너무 자신을 움직이려 애쓰지 마세요.     

 

어떤 슬픔은 그저 느끼고 견디는 것만도 큰 힘을 필요로 합니다.  

         

2. 안전한 공감의 대상 : 마음을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게 받아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 내면의 상처와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의외로 사람들은 아픔 그 자체보다도 그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안전한 대상이 없다는 것 때문에 더 고통스러워진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정말 말하고 싶지만 정말로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고통 속에 홀로 남겨지게 되는 상처의 연쇄와 악순환을 마주하게 됩니다. 


힘든 일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은 말이 넘치는 사람이자 말문이 막힌 사람입니다. 그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딱 맞는 언어를 찾고 일상을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우리가 내면의 상처를 표현해낼 언어를 꺼내기까지 기다려주고 지켜봐 주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혹은 누군가의 상처를 지켜보며 그 자신이 과거에 잘 돌보지 못한 내면의 상처가 건드려지는 바람에, 섣불리 조언하고, 또 섣불리 다 안다고 이야기함으로써, 이미 상처 받은 누군가의 마음에 또 다른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으로 오히려 말문을 닫게 하고 마음의 문을 닫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 누군가를 마주하고 있다면 말을 끊지 말고 짐작하지 말고 평가하지 않고, 표현할 수 있는 만큼 자신의 속도로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3. 진심 어린 공감의 태도 : ‘공감한다’고 말하는 대신 ‘공감하고 싶다’고 말해주세요.  

  

상담자로서 저는 언제나 ‘공감’이라는 단어 앞에서 작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가 어떻게 감히 타인의 고통을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공감’은 언제나 우리가 도달하고자 목표로 하는 마음과 마음의 소통, 포개짐, 찡한 울림일 수는 있으나, 언제나 불가능하고 사실은 닿을 수 없는 신기루와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공감한다’고 말하기를 계속해서 미뤄두게 됩니다. ‘다 알 것 같다’는 감각이 불러오는 섣부른 위로와 조언보다는 ‘아직 잘 모른다’는 태도에 담겨 있는 조심스러운 겸허함과 깊은 배려가 다친 마음을 치유해 나가는 데에 더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지요. 섣불리 ‘공감한다’고 말하기보다는 ‘아직은 잘 모른다. 그러나 더 알고 싶다’는 진심을 전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단지, 진심으로 공감하고 싶은 자로 누군가의 아픔과 고통을 가늠해볼 수 있을 뿐이니까요.      


공감의 연대: 당신의 치유는 나의 치유입니다.     


우리는 왜 타인의 상처에 마음 아파하고 그의 상처가 잘 아물기를 응원하게 될까요? 또 아마도 그건 누군가를 아프게 한 일이 우리 내면에서도 수시로 일어나기 때문이지요. 어떤 낯선 타인이라고 해도 누군가의 상처를 마주하면, 그의 상처가 곧 나의 상처가 됨을 느끼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누군가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며 우리는 타인의 아픔뿐 아니라 내 내면의 아픔도 돌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함께 치유로 향해갑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인 씨는 점점 자신의 상실을 받아들여 갈 수 있었습니다. 또 상실의 고통 역시 점점 옅어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을 때는 음악을 들으면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고, 아픈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덜 힘들다는 것, 그리고 말할 사람이 없을 때에는 자신의 마음을 적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을 자책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떤 관계이든, 어떤 과거의 시간이든, 돌아보면 후회가 되고 아쉬운 점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점점 그녀의 마음을 지배했던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과거로 향해가는 문장들이 점점 ‘지금 나는...’, ‘앞으로 나는...’이라는 현재의 문장들로, 미래로 향하는 문장들로 바뀌어갔습니다. 여전히 그 사람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그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은 하루를 만들어나갈 힘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상실을 겪은 후에, 단 하루도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은 시간을 지나온 후에 결국 그녀는 세상의 모든 상실을 겪어도, 단 한순간도 버틸 수 없는 시간을 지나도, 그래도 자신이 부서지지 않고 온전한 자신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 그 어떤 앎보다, 나 자신에 대한 앎, 그리고 또 나의 경험으로 지나온 앎, 또 단순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절절히 느낌 앎은 우리를 결국 전보다 더 단단하게 해 줍니다. 


우리는 수시로 흔들리고 부서지는 외롭고 여린 낱개의 삶을 살지만 우리의 모든 경험은 결국 우리 혼자 만의 경험이 아닌 함께의 경험이 될 때, ‘왜 나만’이라는 내 고유의 고통이 결국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보편의 경험으로 통합될 때, 내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던 아픈 경험이 결국 내 마음을 이루는 하나의 무늬가 될 때 우리는 결국 진심으로 더 단단해집니다. 상실과 고통은 그저 상실과 고통으로 남지 않고, 우리는 상실과 고통으로 고립되지 않고 우리는 상실과 고통을 딛고 일어섭니다. 혼자가 아닌 함께 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아프면 저도 아픕니다. 하여 당신의 치유는 나의 치유이기도 합니다. 


그 어떤 것에도 기댈 수 없는 막막한 마음이 드는 순간에도 우리는 시간의 힘을 믿어주세요. 타인의 아픔을 마주하게 된다면 섣불리 진단하거나 조언하거나 위로하지 말고 그가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일상을 살아낼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말해주세요. ‘아직은 잘 모르지만 알고 싶다.’ ‘아직은 힘들겠지만 넌 괜찮아질 것이다.’라고, 그저 마음의 힘을 모아주고 다만,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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