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
요즘처럼 먹는 일에 집중했던 적이 없었다.
살아오면서 먹는 행위는 에너지를 채우는 수단에 불과했었을 뿐이었다. 근무 중 밖에서 먹던 점심식사를 코로나와 임신으로 집밥을 하게 되면서 난생처음 그릇을 사들였다. 부족한 솜씨를 그릇으로 정갈하게 다스려보려고 말이다. 딸아이에게 무엇을 해 먹일까. 뱃속 아이를 위해서는 뭘 먹어야 할까.
달큼한 초코 귀리 우유 한 모금을 마시고 시나몬 향이 그윽한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듬뿍 발라 베어 물면서 생각한다. 이번 주 식재료는 뭘 채워두지. 일상의 반이상이 먹는 일인 듯하다. 간식조차 밥으로 먹는 밥순이인 아이는 이제 밖에서는 밥을 먹지 않으려고 한다. 엄마의 음식 솜씨는 미덥지 못하지만 유기농 재료들의 맛은 기가 막히게 아니까.
게다가 레시피 에세이까지 쓰고 있다. 정말 어렵다. 깊이 집중해 본 적이 없는 대상이어서 마치 처음 보는 물건들 같다. 쥐어짜 내고 짜내다 보니 먹는 감각보다는 만드는 행위와 먹는 순간의 감성, 기억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된다. 난 참 미각이 덜 떨어진 사람인가 보다. 남들만큼 맛있게 느낄 수 있다면 좀 더 풍성 해질 텐데.
끄적거림에 삶의 밀도가 담겨있다면 먹는 행위에는 삶 자체가 담겨있다. 차분하고 정갈하게 먹기 위해 담백한 그릇들을 나열하고, 식탁을 마련하고, 주변을 정리한다. 그러다 보니 식탁에 대충 앉아 일하던 컴퓨터와 책들을 치우고 작업공간을 만들고, 공간 구성을 재 정렬했다. 한 끼의 밥을 위해서.
잘 먹자고 하다 보니 잘 자는 일도 중요해졌다. 포근한 이불에 투자를 하고, 자기 전 도란도란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나도 중요해졌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준 장점이랄까. 기본에 충실해지는 것. 작은 일에도 까르르 웃어주는 아이를 보며 고마워하는 것. 더 이상 밖에서 오는 강한 자극들에 의존하지 않게 되는 것. 그래서 마음이 조용해지는 일.
꽃향 가득한 커피 한 잔으로도 하루가 풍성해진다. 거기에 상큼한 오렌지 캔디 한 알이면 일주일을 맞이할 힘이 생긴다. 어떤 일도 차분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점심은 촉촉한 계란말이에 매콤한 제육볶음을 해볼까. 얼음 사각거리는 동치미까지 한 사발 곁들이면 금상첨화지.
코로나로 다섯 시간 내내 책상 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는, 친구들과 대화도 할 수 없다는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꽉 안아줘야겠다. 세상 그 어느 때보다 집은 따뜻하고 편안한 공간이 되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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