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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영국에 왔을 때 한국인은 별로 없는 이 동네에 그래도 한국 음식점이 하나 있다는 사실은 존재만으로 작은 위로가 되었다. 아이들 때문에 실제로 들어가 본 일은 두 번밖에 없었고 주인이 바뀐 뒤로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처음에 그곳에 갔을 때, 아직 어린아이들 셋을 키우고 있다는 이야기에 처음 만난  분이 해주신 말씀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아휴아이들 그 맘쯤이 제일 힘든데 둘째랑 셋째는 터울도 차이가 안 나고 정말 힘들겠어요. 마음 같아서는 애들 내가 봐줄 테니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세요. 하고 싶네요.”

이런 말들이 뒤늦게 큰 위로가 된다. 미리 받은 위로의 선물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그분들도 어쩌면 그런 위로가 자신에게 절실했던 경험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파본 사람만 알 수 있는 아픈 사람의 마음이 있다는 생각도 한다. 그 분들은 어쩌면  위로의 선물을 시간이 지난 후에 다른 사람에게 전하며 과거의 자신을 만나 위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누군가를 안아주는 일이 결국에는 과거의 나를 안아주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위로에 있어서는  꼭 맞는 타이밍이 아니라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위로는 타이밍이 꼭 맞지 않아도 괜찮고 또 오히려 타이밍이 맞지 않아 더 오랜 여운으로 마음에 남는다.뒤늦은 것이든 이른 것이든, 마음을 담은 모든 말들은 아름답고 힘이 있다. 우리의 현재는 누군가의 과거가 되고 또 누군가의 미래가 되기도 한다. 또 그렇게 우리 모두가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게 되니, 우리는 한없이 외로워졌다가도 종국에는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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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6-24 15:18:11
  • 수정 2021-06-24 15:2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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