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훈
우리는 성공에 대해 너무 찬란한 면 만을 보고자 한다. 사회적인 성공과 지위를 위대한 것이라 여기고 찬양하는 사회 풍조가 팽배하다. 더욱이 우리는 실패와 성공을 면밀히 관찰함으로써 교훈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저 사람은 어떻게 성공했을까? 저 사람은 왜 실패했을까? 라는 물음으로 분석하고, 나는 저 사람의 어떤 면을 본받아야 할지에 대한 인사이트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사회적인 성공과 부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우리는 동경한다. 그리고 그 삶의 여정은 나의 삶보다 위대할 것이다, 더 가치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게 된다.
이번 칼럼에서는 그러한 풍조가 우리의 삶을 더 불행하게 할 수 있으며, 진실로 우리의 행복을 위해 중요한 것은 우리 일상의 매 순간순간의 평범한 삶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불행과 행복은 한 뿌리에서 나온 것들, 불행은 행운의 도플갱어
뛰어난 재능과 멋진 성공이 개인의 노력에서만 나온 것일까?
위키백과에 따르면 도플갱어(doppelganger)라는 낱말은 1796년 독일 작가 장 파울(Jean Paul)이 그의 소설에 처음 사용한 이후로,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
문학작품의 소재로 쓰이고 있다. 도플갱어는 한 마디로 나 자신과 똑같은 존재를 의미한다.
우리가 그토록 찬양하는 위인들의 일반화된 비법들은 있을까? 그 비법들의 정수를 뽑아낼 수 있다고 가정할 때, 우리에게 비법을 적용한다면 멋지게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일까? 필자는 그에 대한 답을 단호히 NO라고 주장하고자 한다. 성공의 비법 1을 사람들에게 도입한다고 하자. 결과적으로 비법 1은 A라는 사람에게는 불행을, B라는 사람에게는 행운을 불러올 수 있다. 불행과 행복은 한 뿌리에서 나온 것들이다. 행위와 비법은 단순히 인생의 결과가 좋았기 때문일 수 있으며, 우리 인생의 모든 결과가 개인의 노력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건 하우절(Morgan Housel)은 “어쩌다 한번 운이 좋았을까, 아니면 대단히 기민한 의사결정이었을까?”를 구분할 수 있을지 반문하면서, 아래 사례를 제시한다. 2006년 야후의 10억 달러 매수 제안을 거절한 마크 저커버거를 천재라고 칭찬한다. 미래를 내다보고 자신의 입장을 고수했다고 말이다. 아마도 사람들은 마크 저커버그의 성공의 비결 중의 하나를 “미래를 내다보고 자신 스스로를 믿고 입장을 고수한 것”이라 정리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반대로 2008년 마이크로소프트의 대형 인수 제안을 거절한 야후의 의사결정은 열렬하게 비판한다. “떠날 수 있을 때 떠나야 하는데 너무 욕심부렸다”라고 말이다. 두 사례 모두 자신의 성장 가능성을 믿고 입장을 고수한 결정일 텐데, 왜 다른 결론이 났는가? 같은 행위라도 불행의 씨앗이 될 수도, 행운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행운의 도플갱어는 바로 불행이다.
때로는 누군가의 실패와 빈곤이 그 사람의 게으름 때문이 아니고, 누군가의 성공이 남보다 더 멋지게 산 결과가 아닐 수 있다. 뛰어난 현자의 자질로 태어나도 시대나 상황이 따라주지 않으면 결코 자신의 뜻을 펼치기 어렵고, 큰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남들보다 더 큰 부와 명예가 따라오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우리 삶에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일반화된 성공 비법이 아니라, 자존감
덴마크의 대표적인 교육가인 예스퍼 율(Jesper Juul)은 자존감과 자신감의 개념적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존감은 ‘난 존재 자체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마음이다. 반면 자신감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에 유능하며 어떤 재능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개념이다. 즉 자신감은 자신이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개념으로 학위, 실적과 같이 외부적으로 드러내는 자질에 관한 것이다.
사회는 우리에게 성공, 학위, 실적과 같은 ~하는 법에 대한 교훈들로 넘쳐난다. ~하면 성공할 수 있고, ~하면 저 사람처럼 위대해질 수 있다는 교훈들은 이미 시중에 충분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성공의 내러티브가 우리의 삶이 마치 더 노력하지 않아서, 더 배우지 않아서 실패하는 삶인 것처럼 우리의 심리를 옥죄고 삶의 여유를 옥죄고 있다. 내가 더 노력하지 않아서, 그리고 내가 더 부지런하지 않아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심리 기저에 자리 잡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한 시도 평안한 순간을 누릴 수 없을지 모른다. 혹자는 불행의 지름길이 바로 남과 비교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물론, 타인보다 잘 살고자 하는 욕망은 우리 사회의 발전과 개인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 욕망만이 남아,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를 구분하고 남과 비교만 한다면, 결국 늘 불행할 것이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완전하게 성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때,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바로 자존감이다. 꿈을 꾸고, 최선을 다해 그것들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서 성취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다면 행복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우리네 모든 평범한 삶을 향한 응원
- “평범해도 당신의 삶은 아름답습니다.”
필자 또한 존경하는 인물들의 삶의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그 사람들의 삶의 여정을 찾아보고 배우고자 노력할 때가 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동시에 필자는 삶의 위대함은 단순히 사회적 성공이나 포지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진실된 행동과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에서 온다고 믿는다. 가령, 어머니의 오랜 친우분 중에서도 필리프 신부님이라고 한국에서 봉사하시는 프랑스 국적 신부님이 계신데, 그분은 암 투병으로 몸이 아프신데도 언제나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늘 묵묵히 삶을 긍정하며 봉사하시는 분이다. 개인적으로는 이토록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사랑을 실천하는 분들은 필자의 삶을 스스로 한 번 더 성찰하게 하고, 또 경외심을 불러 일으킨다.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호의를 베풀고 삶을 긍정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 이상으로 아름다운 삶이 있을까?
그리고 내게 위대한 삶이란, 평범하지만 선하게 살아가는 모든 보통 사람들을 포함한다. 평범해도, 성공하거나 특별하지 않아도 당신의 삶은 아름답다. 당신이 사회적으로 성공하든, 성공하지 않든 돈을 많이 벌든, 많이 벌지 못하든, 하루하루 수많은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고 묵묵히 살아나간다는 것, 그 삶 자체만으로 충분히 칭찬받을 만하다고 확신한다.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의 삶이 평범해도, 그리고 처절해도, 견디며 살아가는 그 자체에 대해 진심을 담아 존경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엘렌 바스(Ellen Bass)의 시로 이번 칼럼을 맺고자 한다.
내 인생 최악의 날에
내 인생 최악의 날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고
눈물마저 고갈되어
내 몸이 바싹 마른 물 항아리처럼
텅 비었을 때
나는 밖으로 나가
레몬 나무 옆에 섰다.
그리고 엄지손가락으로
잎사귀 하나의 먼지를
문질러 주었다.
그런 다음 그 서늘하면서도 윤기나는
잎을 뺨에 대었을 때
소스라치게 놀란
그 강렬한 생의 향기!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항상 가슴 뛰는 용기와 생의 의지와 아름다운 평범함을 간직하기를 진심을 담아 마음속 깊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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