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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신문_The Psychology Times=김가영 ]



‘망각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라’

- 프리드리히 니체 -


흔히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한다. 특정한 기억을 제외하고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기억들은 자연스럽게 잊혀진다. 때론 잊고 싶지 않은 기억마저 잊혀져 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기억을 강제로 삭제한다면? 자신의 기억에서 누군가와 관련된 기억, 즉 한 사람을 삭제해 버린다면? 좋지 않은 기억이라고 삭제해 버리는 것이 본인에게 어떠한 선택이 될까? 망각은 정말로 복일까?


‘이터널 선샤인’의 조엘은 앞에서 말한 질문처럼 연인이었던 ‘클레멘타인’을 삶에서 삭제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이 삶에서 한 사람을 삭제하기까지의, 또 삭제하는 과정에서의 심리를 보여준다. 


어딘가 무기력해 보이며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조엘, 즐거운 것을 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은 1초도 아까운 클레멘타인. 둘은 얼핏 보기에도 굉장히 달라 보이는 연인이다. 충동적인 성격의 클레멘타인은 그녀의 성격처럼 기분에 따라 머리색을 바꾸곤 한다. 그들은 오래된 연인임에도 다른 성격 때문에 점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힘든 상황이 지속되자 클레멘타인은 충동적으로 조엘을 기억에서 삭제해 버리고, 그에게 큰 상처를 주게 된다. 


초반의 조엘은 클레멘타인이 자신을 지웠다는 배신감과 그동안의 힘들었던 상황들로 그저 그녀를 자신에게서 삭제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자책하기도 하고, 끊임없이 이유를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등 조엘은 연인과의 헤어짐으로 인한 불안정한 심리를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의 이러한 괴로운 감정을 해소하고 싶어하며, 그 해소를 같은 방식을 통한 복수로 실현하고자 한다. 


하지만 기억을 삭제하는 과정에서 조엘은 잊고 있었던 행복했던 기억들을 하나하나 마주하게 된다. 기억들을 되짚어가면서, 클레멘타인과 함께했던 장면이 하나씩 사라져 갈수록 그는 기억을 삭제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자신에게서 그녀가 사라진다는 사실에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행복했던 기억은 잊고 괴로운 기억만을 떠올리고 있었다는 사실과 그녀를 삭제한다는 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는다. 자신이 여전히 클레멘타인을 사랑하고 있으며, 그녀를 삭제하는 것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일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는, 오히려 괴로움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을 선택적으로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조엘은 클레멘타인과의 관계에서 지쳐가면서 현재의 힘든 상황 때문에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들을 잊고 괴로운 장면들만을 기억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기억을 삭제하는 과정을 통해 잊었던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 것이다. 


이처럼 잊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되면서 클레멘타인을 향한 사랑을 확인하고 그녀를 잊는 것을 고통스러워했던 조엘의 모습은 '과연 망각이 정말 좋은 것일까?' 라는 생각이 떠오르게 한다. '이터널 선샤인'이라는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기억의 상대성, 그리고 망각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괴로운 기억을 위한 망각은 복일 수 있지만 그것을 잊기 위한 무조건적인 망각은 행복했던 기억까지도 사라져버리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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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7-23 09:4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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