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여정
[심리학 신문_The Psychology Times=임여정 ]
서점 직원 조는 책을 구매하러 온 뉴욕 대학교 작가 지망생 백에게 반해 그녀를 스토킹하기 시작한다. 조의 짝사랑은 잘못된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는 백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해 대학 전공과 아버지의 부재, 친구들 정보, 집 주소까지 파악한 후 몰래 자택 침입까지 해 백의 침대에 누워 그녀의 노트북을 보며 홀로 내적 친밀감을 쌓는다. 자택 침입 중 백이 집에 오자 “난 걱정 안 돼요. 로맨틱 코미디 보면 나 같은 남자는 툭하면 이런 위기에 처하거든요”라는 그의 나래이션은 자신을 영화 속 주인공과 동일시하고 있는 그의 망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전형적인 스토킹 가해자처럼, 조 역시 백을 계속 따라다니는 행위를 통해 그녀를 자신의 의지대로 통제하고 있다는 착각과 만족감을 느낀다. 스토킹을 이어나가던 중 술에 취해 지하철 난간에 떨어진 백을 구해주며 얼떨결에 생명의 은인이 된 조는 백의 삶에 발들 들이며 둘은 연인으로 발전한다.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후에도 조는 백의 사랑과 믿음을 병적으로 의심하는 편집증적 경향을 보인다. 결국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귀네베어 백을 죽여버린다.
시즌 1의 에피소드 10의 제목은 “푸른 수염의 성”이다. 샤를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에서 푸른 수염과 결혼한 여자들이 존재를 감추고 사라지는 것처럼, 주인공인 조가 사랑한 여자들은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다. 조의 첫사랑으로 보이는 캔디스는 이탈리아에 갔다고 하지만 주위에 그녀와 연락이 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작가 지망생 백은 온 세상과 단절한 채 어딘가에 틀어박혀 글을 쓰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는 두 여성을 살해한 후 그녀들의 SNS 계정에 로그인해 “이탈리아로 떠난다.”, “나는 잘 지낸다”라는 식의 글을 게시한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이 사랑했던 두 여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일이라고 굳게 믿으며, 사랑이란 명목으로 그가 저지른 모든 스토킹과 가스라이팅, 살인을 정당화해 버린다. 이런 조의 ‘구원 환상’은 드라마 전반에서 관찰된다.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건 보통 가장 힘없는 존재야. 그래서 우리처럼 지켜줄 사람이 필요해.” 서점 직원 조가 오래된 책이 상하지 않도록 햇빛이 닿지 않는 곳에 넣으며 한 말이다. 이런 그의 사고는 인간관계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그는 여자친구 백 몰래 그녀 주변의 나쁜 사람들로 보이는 전 연인 벤지와 친구 피치를 납치, 감금, 살해하며 신의 역할을 자처한다. “가끔은 사랑하면 사람을 위해 나쁜 짓을 하는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 조의 ‘구원 환상’ 이면에는 과대한 이상적 자아상과 자신의 전능감을 확인하려는 마음이 숨어있다. 과대한 자신의 이미지는 이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으로 발생하는 열등감의 반작용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스토커는 상대에게 연애 감정으로 상대도 자신을 좋아할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이성에 접근해 일방적으로 집착해 따라다닌 끝에 최악의 경우에는 살인까지 저지르는 망상 범죄자다. 이름만 들으면 무시무시해 보이는 스토킹 범죄는 생각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집이나 직장 앞에서 기다리기나 원하지 않는 선물을 보내는 것도 피해자의 공포심과 불안감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스토킹에 해당한다.
이처럼 대부분의 스토킹은 애정 행위와 불법행위의 경계 선상에 있는 경우가 많다. 스토킹 가해자가 전 연인이거나 지인인 경우가 많으며, 스토킹의 원인으로 ‘호의 감정’, ‘호의 감정을 받아주지 않은 원한 감정’이 가장 많은 것을 보았을 때 알 수 있다. 스토킹 신고율이 낮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인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보니 경찰서에 가기엔 개인적인 일이라고 판단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연구 자료에 따르면 스토킹 가해자의 목적 중 하나는 관계 유지에 있었다. 헤어진 후나 거절당한 후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지 못한 채 그나 그녀의 SNS를 염탐하거나 동네에 찾아가 산책하며 자신의 행동이 스토킹 피해자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때 망상이 동반되는 경우가 잦다. 그렇다면 “너의 모든 것”의 주인공 조는 어쩌다 이런 스토커 연쇄 살인마로 자라게 된 것일까.
“너의 모든 것” 시즌 2는 조의 과거와 현재의 조를 교차시켜 보여주며 조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정당화하게 된 계기를 보여준다. 어린 조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어른인 어머니에게 살인을 정당화 받는다. 어머니를 구타하고 있는 아버지를 총으로 쏘며 인생 첫 살인을 저지른 어린 조에게 엄마는 자신을 구해주었다고 말한다. 이후 외도와 바람을 일삼는 어머니께 버림받은 조는 소련 교도관 출신 서점 주인 무니에게 입양되고, 무니는 조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유리 케이지에 조를 가둔 후 “케이지 안 책을 모두 읽어 선조들의 지혜를 깨달아야 네 아빠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며, “이 모든 행동은 순전히 조를 위한 것”이라며 가스라이팅 한다. 즉 무니가 특수 유리 케이지에 어린 자신을 가둔 것처럼, 어른 조는 케이지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백을 가두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드라마 ”너의 모든 것”은 정서적 신체적 학대로 인한 불안정 애착력을 가진 어린아이가 편집증이 있는 스토커 연쇄 살인마가 된 비극이다.
어떠한 원인에서든 스토킹은 명백한 범죄다.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집착을 조금이라도 들어주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피해자의 대답을 스토킹 가해자가 긍정적인 신호로 잘못 인지해 더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노원 세 모녀 살인 사건’ 이후 스토킹 범죄자 신상 공개와 처벌 강화, 신체적인 위협을 가하지 않았더라도 피해자가 두려움을 느낀다면 처벌할 수 있는 예방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거셌다. 적어도 신체적 위협이 없으면 법적 처벌이 제한된다며 사고 발생 후 수습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한편 국회는 ‘세 모녀 피살 사건’ 이후 스토킹범죄처벌법을 통과시켰다. 2021년 9월부터 스토킹 범죄 가해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 형사처벌을 받게 되며 흉기를 이용한 스토킹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 이전까지 스토킹 혐의는 경범죄로 분류되어 10만원 이하의 범칙금 수준에 그쳤었다.
<참고 자료>
• 이창한(Lee Chang Han). "스토커의 심리적 특성에 관한 연구." 한국범죄심리연구 5.1 (2009): 93-119.
• 곽영길(Kwak Young gil),임유석(Lim You Seok),and 송상욱(Song Sang Wk). "스토킹의 특징에 관한 연구." 한국범죄심리연구 7.3 (2011): 47-76.
• Ahona Guha DPsych, Why People Stalk, What is stalking? What makes people stalk? What to do if you are being stalked. Psychology Today, May 18. 2021,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prisons-and-pathos/202105/stalking-its-not-always-the-stranger-in-the-bushes
• 전종보(헬스조선), 스토커들의 심리 상태를 파헤쳐봤다.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1/04/15/20210415011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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