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영
※ 이 글은 영화 <리플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리플리는 거짓된 삶을 사는 톰 리플리(멧 데이먼 분, 이하 톰)의 이야기이다. 톰은 미국에서 낮에는 피아노 조율사로 밤에는 호텔 종업원으로 일하며 평범하고도 초라하게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한 파티에서 우연한 계기로 피아니스트 흉내를 내며 피아노 연주를 선보였고 선박 부호 그린리프에게 눈에 띄어 모종의 부탁을 받는다. 바로 이탈리아에 있는 자신의 아들 디키(주드 로 분)를 미국으로 데려와달라는 것. 이를 성공할 시 1,000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한다. 초라했던 현실에서 벗어나 이탈리아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디키와 그의 약혼녀 마지(기네스 펠트로 분)에 접근하여 그들과 같이 생활하게 되고 톰은 이들의 호화로운 삶에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톰에게 실증이 난 디키가 톰에게 미국으로 돌아가라고 말하자 톰은 화가 난 나머지 디키를 살해한다. 이후 톰은 디키로 신분을 위조하고 마치 자신이 디키인 냥 모두를 속이며 자신이 동경했던 삶을 살아간다. 이후 그가 만들어낸 거짓된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과 악행을 일삼으며 톰은 “초라한 현실보다는 화려한 거짓이 낫다” 라고 말한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톰과 같이 모두를 완벽히 속일 수 있고 이를 통해 동경했던 누군가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혹은 거짓으로 무언가를 얻거나 이뤄냈던 경험이 있는가? 영화 리플리를 통해 열등감에서 비롯한 거짓된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고 이를 리플리 증후군과 같이 풀어내보고자 한다.
영화는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씨 (The Talented Mr. Ripley)>를 원작으로 하며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단어 자체가 거짓말을 일삼는 해당 소설의 주인공 리플리로부터 유래되었다. 리플리 증후군이란 현실 세계를 부정하고 허구의 세계만을 진실로 믿으며 상습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일삼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말한다. 거짓이 탄로 날까 봐 불안해하는 단순 거짓말쟁이와 달리, 리플리 증후군을 보이는 사람은 자신이 한 거짓말을 완전한 진실로 믿는다. 리플리 증후군은 정신의학과에서 사용되는 공식 진단명은 아니며 공상 허언증의 일부 증상을 리플리 증후군이라 한다.
1997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연구팀이 다양한 직업을 가진 20여명에게 소형 마이크를 부착해 하루동안 나눈 대화를 녹음하게 한 뒤 분석한 결과 이들은 하루 평균 약 200회의 거짓말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거짓말은 인간의 잘 발달된 인지기능을 대변하는 것이며 비정상적인 증상은 아니다. 하지만 리플리 증후군과 같은 병적인 거짓말은 일반 거짓말과 양상이 상당히 다르다. 병적 거짓말은 일반 거짓말에 비해 훨씬 더 빈번하며 그 구조가 치밀하여 거짓말임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또한 자신이 만들어낸 거짓말을 진짜라고 믿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서 거짓말탐지기를 통해 적발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결국 리플리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의 실체는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열등감을 느끼고 긴장,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과도한 성취욕으로 끊임없이 높은 이상을 추구하지만 이를 자신의 능력으로 충족할 수 없기에 자신이 처한 현실을 부정하고 허구를 창조하고 만 것이다. 초라한 자신을 바라볼 용기조차 없어 거짓된 세계를 꾸미고 이를 믿어야만 한다는 것이 처절하게 느껴진다.
“인간은 누구나 완전하지 않는 존재로 태어났으며 열등한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
아무리 완벽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단점이 커 보이는 날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누군가의 성취에 비해 내 자신이 초라해 보이기도 하다. 타인과 비교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이며 사회에서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비교는 열등감을 낳는데 열등감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열등감을 통해 성장욕구를 자극할 수 있고 실제도 자신을 더 나은 상태로 발전시킬 수 있다. 하지만 열등감이 좌절로 표출되고 이를 핑계로 부정적 결과를 합리화한다면 자기애의 상실로 이어지며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하려 한다.
<리플리>에서 톰은 거짓된 세계를 들키지 않는데 성공하지만 이는 결코 해피엔딩은 아니다. 톰은 거짓말을 들키지 않기 위해 톰을 가장 진심으로 대해주었던 피터를 살해한다. 가장 행복과 가까웠던 순간 불안감을 이기지 못한 끝에 스스로 그 행복을 파괴한다. 소설 <재능있는 리플리씨>의 결말 역시 잡힐지도 모른다는 극심한 불안감에 평생 편집증으로 괴로워하는 톰을 그린다. 비록 거짓말을 들키지 않아 구속을 면하는 신체적 자유를 누릴 수 있었지만 톰은 영원히 스스로를 거짓된 세계에 가두며 정신적인 자유를 누릴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타인보다 열등하다. 그러나 이를 발판삼아 한 걸음 더 나아갔다면 이 자체로 의미있다는 사실을 깊히 새겨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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