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지
[심리학 신문_The Psychology Times=송원지 ]
1년 중 5월은 가정과 관련된 행사가 많아 흔히 가정의 달이라 불린다. 그중 5월 25일(실종아동의 날)은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가정의 달을 함께 보내고 싶어 하는 누군가의 그리움, 간절함의 의미가 담긴 날이다.
“1991년, 13살의 딸 유리 양이 실종된 이후 아버지 정원식 씨는 지하철에서 '우리 아이를 찾아주세요.' 라고 적힌 전단을 돌리고 있습니다. 28년 동안 계속된 일입니다. 평소 조용한 성격이지만 가끔 언성이 높아질 때가 있습니다. 가끔 누군가 "그만 찾으러 다니고 잊으라"고 말할 때입니다. 정 씨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네 자식 잃어버렸으면 그랬겠냐'며 답한다고 합니다. 실종 아동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부모의 마음속에 어린아이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실종아동 가족들의 이야기입니다. 세월은 흐르고 자신은 나이를 먹어도 잃어버린 자식만큼은 '그날'에 멈춰 있는 겁니다. 아이의 육체는 잠시 사라졌을지라도 부모는 눈 감는 날까지 잊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
출처: [취재 후] “잊을 수 없는 잃어버린 아이”…장기 실종 아동 486명-1명, KBS NEWS, 오대성 기자
출처: 박지호 기자, 서울 시내 주택가 놀이터 펜스에 붙어있는 실종아동 전단지(2007)
해마다 우리나라의 실종 아동 신고는 약 2만 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정부 및 민간업체의 노력으로 2017년부터 최근 5년간 실종 아동의 99% 이상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있으나 99% 통계 밖에는 멈춰진 시간 속 사라진 자녀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있다.
보건복지부와 경찰청에서 제공한 실종아동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장기 실종 아동은 총 840명이다. 실종 이후 시간이 경과하였음에도 아동을 발견하지 못하면 사건은 경찰 행정력 배정과 수사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되며 결국 해결되지 못한 미제사건이 된다. 해결되지 못함은 실종 아동의 부모에게 현재 진행형의 상실을 경험하도록 한다.
자녀의 상실은 부모에게 큰 심리적 외상을 유발한다. 특히 아동을 실종으로 상실한 부모의 경우, 자녀의 사망을 확인한 부모보다 우울 정도, 대인관계, 경제 활동 등 여러 면에서 더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자녀의 죽음을 확인한 부모의 경우 자녀의 상실로 인한 큰 심적 고통을 경험하나 자녀의 장례식을 치르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자녀의 추억을 회상하는 등 애도를 통해 상실에서 일상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자녀가 실종된 부모는 자녀가 어딘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인해 자녀를 기다리지만, 시간이 지나도 자녀를 만날 수 없어 좌절한다. 또 이미 시간이 지나 애도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여 오랜 기간 심리적 외상에 시달린다.
실종 아동의 부모가 겪는 상실의 형태는 일반적인 상실과는 다른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자녀가 곁에 존재하지 않지만, 어딘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과 희망, 그러나 끝없는 기다림과 시간이 흘렀음에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절망감은 상실의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불확실성과 모호함은 실종 아동 부모에게 모호한 상실을 경험하도록 한다.
모호한 상실은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학의 교수 Pauline boss가 이론화한 개념으로 상황의 모호함으로 인하여 상실의 정상적인 애도 과정을 마무리할 수 없는 상태로 인해 외상적 고통이 지속하는 것을 말한다. (Boss, 1999) 그는 전쟁에 참가하였으나 종전 이후에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실종 군인들의 가족을 대상으로 현상학적인 연구를 진행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모호한 상실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Boss에 따르면 2가지 타입의 모호한 상실이 존재한다. Type 1은 신체적으로는 부재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실존하는 상태로 자연재해, 전쟁 등으로 인한 실종, 항공기 추락 사고 이후 시신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 등을 말한다. Type 2는 신체적으로는 실존하지만, 심리적으로 부재한 것이다. 알츠하이머 등의 치매나 만성적인 정신질환, 코마 상태 등의 경우를 지칭한다.
Type 1: 신체적인 부재와 심리적인 실존 | Type 2: 신체적인 실존과 심리적인 부재 |
재난적, 예측 불가능한 상황 | |
자연재해, 전쟁으로 인한 실종 항공기 추락으로 인한 시신이 없는 경우 | 알츠하이머 등의 치매 만성적인 정신질환 무의식 상태, 코마 상태 |
일반적인 상황 | |
이혼, 재혼 입대, 유학 | 향수병(이민) 입양, 이혼, 재혼 |
출처: 장시 실종 아동 부모의 상실 경험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 표1 발췌
Type 1의 속하는 모호한 상실의 경우 신체적으로 부재하기 때문에 부재한 대상의 생존 여부를 알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생존 여부의 불확실성은 상실의 모호함을 발생시키는데 이로 인해 상실의 과정에 있는 사람들은 정상적인 애도 과정을 거부하고 주변과 사회로부터 제공되는 모든 심리적인 지원을 차단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늘이의 엄마 혜경 씨는 원래 성격이 밝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이 혜경 씨의 삶을 180도 바꿔놨습니다. 생업을 미뤄둔 남편과 함께 전국을 떠돌았습니다. 부유한 집안이 아니었기에 금세 생활은 졸아들기 시작했습니다. 3년이 지나니 신용카드는 10개까지 늘었고, 돌려막기 끝에 더는 빚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느새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가 됐습니다.” |
출처: [취재 후] “잊을 수 없는 잃어버린 아이”…장기 실종 아동 486명-1명 인터뷰 중 발췌, KBS NEWS, 오대성 기자
장기 실종 아동 부모의 상실 경험에 관한 현상학적 한 연구(이금희, 2018)에 따르면 장기 실종 아동의 부모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를 겪는다고 한다.
첫째, 자녀의 실종으로 인한 심리적 상실과 자녀에 대한 그리움 및 염려는 부모 자신의 무책임으로 인해 실종되었다는 죄의식을 유발하며 이로 인해 우울과 무기력을 경험한다.
둘째, 심리적 고통으로 인한 고통은 신체적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죄책감과 우울은 불면증을 유발하며 자신을 돌보지 않고 방치하게 만든다. 또 과한 음주 및 흡연 등으로 인한 알코올 중독, 약물 남용일 발생하기도 한다.
셋째,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을 돌보지 못하여 가족의 해체를 일으킨다.
넷째, 실종 아동의 부모는 자녀를 찾으러 다니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이 과정에서 생업과 일상생활을 중단하게 된다. 생업의 중단과 자녀를 찾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소모하는 과정은 경제적 문제를 발생시킨다.
다섯째, 자녀를 찾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사회로 전이되며 자신이 속한 공동체 및 세상에 대한 원망, 불신으로 확산하기도 한다.
출처: 장기 실종 아동 부모의 상실 경험의 맥락적 구조화_장시 실종 아동 부모의 상실 경험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 그림4 발췌
“정말 미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아직까지 멀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저는 아이를 보지 못한다면 시신이라도 찾고 싶어요. 제가 부모로서의 역할을 못했기 때문에 시신이라도 찾아서 묻어주고 싶은데 그것도 안되니까.. 정말 막막합니다. 누구에게 우리의 힘든 사연을 하소연할까요? 정말 절망감을 느낍니다.” (참여자4)
“어떻게서든지 아이를 찾고자 하는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있어요.” (참여자1) |
출처: 김진숙(2014), 장기 실종 아동 부모들의 피해 경험 연구 중 실종 가족 인터뷰 중 발췌
실종 가족에게 있어 실종자의 시신 발견은 상실을 수용하고 이별을 이야기하는 것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실종자의 가족은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는 동시에 실종자의 시신을 찾아다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시신이 발견되기 전까지 희망을 놓기 어렵기 때문이다(Boss, 2002).
장기 실종 아동 가족의 상실 경험에 관한 한 연구(이금희, 2018)에 참여한 부모들 모두 자녀를 찾지 못하게 되자 자녀의 죽음을 의심하게 되었고 자녀가 사망하였다면 시체라도 찾고 싶은 마음에 병원 영안실, 야산까지 뒤진 경험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현재 2005년 실종아동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실종 아동을 찾기 위한 전문적인 시설이 전국에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실종 아동 부모를 위한 의료 지원 및 상담 지원 등 다양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또 2012년 지문, 얼굴 인식과 같은 사전 등록제 시행 시작 후 실종 아동 발견율이 증가하였다. 그런데도 미국 등 외국과 비교했을 때 장기 실종 아동에 대한 국가 및 사회적 개입이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장기 실종 아동의 가정 복귀를 위한 수사체계 및 인력 확보, 정책적 지원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실종 아동 부모들 역시 경제적, 의료적 지원 등의 실질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장기 실종 아동 사건을 해결에 있어 실종 아동 부모들이 겪는 상실의 맥락을 세심히 이해하고 그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고려한 실질적인 지원체계를 마련이 시급한 현실이다.
출처: 홍해인 기자, 장기 실종 아동 찾아 주기 캠페인에 나눠진 전단지(2016)
“어쩌면 당신 옆에 있는 아이, 실종아동일 수 있습니다.”
(2021년 실종아동의 날 슬로건)
실종 아동 문제는 비단 부모 당사자만의 개인적인 슬픔이자 안타까운 비극이 아니다. 골목길 가득한 CCTV와 차량에 설치된 블랙박스도 안전을 완전히 보장하지는 못한다. 실종 아동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아이들이 안전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누구나 잠재적인 피해자가 될 위험이 크다.
남편을 잃은 부인에게는 과부, 부인을 잃은 남편에게는 홀아비, 부모를 잃은 자식은 고아라고 하나 자식을 잃은 부모는 그 고통을 감히 헤아릴 수 없어 부르는 명칭이 없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만큼 자녀의 상실로 인한 고통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는 뜻일 것이다. 1%의 모호한 상실들이 모두 발견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실종이라는 이름 아래 더는 미제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 실종 아동 온라인 신고: 안전 Dream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safe182.go.kr)
■ 경찰청 실종 아동 찾기 센터(전화): 182/아동 권리보장원 실종 아동 전문기관: 02-777-0182
<참고 문헌>
이금희(2018), 장기 실종 아동 부모의 상실 경험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
Pauline G. Boss Ph. D (2002), Ambiguous Loss: Working with Families of the Missing
김진숙(2014), 장기 실종 아동 부모들의 피해 경험 연구
오대성 기자, [취재 후] “잊을 수 없는 잃어버린 아이”…장기 실종 아동 486명-1명, KBS NEWS
이재은 기자, [사진 톡톡] 실종아동의 날을 아시나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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