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영
[심리학 신문_The Psychology Times=임나영 ]
2020 도쿄올림픽이 14일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폐막하였다. 올림픽을 통해 다양한 스포츠 경기 중계를 시청할 수 있었는데 종목을 막론하고 해설자들의 공통된 멘트를 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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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식 선수가 여기서 듀스를 만들면서 흐름은 완전히 우리 것이 됩니다.”
- 2020도쿄올림픽 남자 탁구 단식 32강 KBS 중계방송
영상 링크로 이동“이번 세트도 중요하지만 다음 세트를 위해서라도 더 몰아 붙여야죠. 경기 전반적인 분위기를 가져와야 합니다.” “완벽하게 2세트 기세를 가져오는 대한민국!”
- 2020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8강 MBC 중계방송
스포츠 경기에서 흐름은 승부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해설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이며 연속적인 득점, 실점 상황에서 승부의 방향을 점치는 의미로 통한다. 이에 스포츠 경기에서 흐름을 결정짓는 심리학 현상을 소개한다.
1985년 심리학자이자 행동경제학자인 아모스 트버스키와 심리학자 토머스 길로비치가 인지심리학회지에 기고한 <농구 경기에서 뜨거운 손>에서 처음으로 ‘뜨거운 손 현상’을 소개하였다. 농구 경기의 관중들은 흔히 이전에 던진 2~3개의 슛이 성공한 선수들에 대해 다음 슛 역시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전 슛이 성공했다고 해서 다음 슛의 성공 확률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농구선수의 슛은 각 시행에서 일어난 사건이 다른 시행에 일어난 사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독립시행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이전의 슛과 다음의 슛의 성공은 서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관중뿐만 아니라 경기를 뛰고 있는 동료 선수들 및 당사자 역시 그가 다음 슛을 보다 쉽게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며, 마치 선수가 공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뜨거운 손’을 가져 더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착각한다.
영상링크로 이동. 2020도쿄올림픽 여자농구 조별예선 대한민국VS스페인뜨거운 손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이전의 성공에 대한 관찰이 지각과 기억에서의 편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는 설명과 범주화 과정에서의 편향으로 인한 것이라는 가설이 있다. 즉 여러 차례의 시도에 대해 사람들은 우연적으로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비우연적이고 유사성을 가지는 것으로 지각할 때 보다 쉽게 기억하고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경기에서나 평소보다 유난히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는 선수가 있다. 그리고 농구를 비롯한 스포츠 경기를 뛰어본 경험이 있다면 오늘따라 더 슛이 잘 들어가는 날이 있다는 걸 알 것이다. 이는 ‘뜨거운 손’ 덕분이 아니라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에 비추어 설명할 수 있다.
자기충족적 예언이란 바라거나 예언하는 바가 현실에서 충족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현상을 뜻한다. 자기충족적 예언을 처음으로 언급한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실제 상황보다는 상황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행동한다고 한다. 즉 이전의 성공은 다음의 성공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근거하기 보다는 그가 잘하고 있으니까 앞으로도 잘할 것이라는 비우연성과 의미를 부여해 상황을 해석한다. 한두번 성공을 거듭하게 되면 동료들은 그를 뜨거운 손을 가진 선수로 의미부여해 더 많은 패스를 주고 당사자 역시 자신감을 얻어 보다 과감한 플레이를 시도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이런 시도들이 그에게 더 많은 성공할 기회를 만들어 주어 해석은 현실이 된다.
자기충족적 예언은 긍정적 방향, 부정적 방향 모두로 작용할 수 있다. 지고 있는 경기에서 “오늘 경기는 끝났어.”라고 말하거나 생각하면 그대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감독이나 코치가 선수에게 낮은 기대치를 부여하면 그는 그 평가에 일치하는 방향으로 행동하여 낮은 기대가 현실화된다. 이는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용어로도 많이 알려져있다.
영상링크로 이동스포츠 경기에서 대역전극에는 항상 긍정적인 자기충족적 예언이 있었다. 2016리우올림픽 남자 펜싱 결승전에서 박상영 선수는 상대선수의 매치포인트 상황에서 5점 연속 득점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는 경기 내내 스스로에게 ‘할 수 있다!’라고 외쳤는데 대역전극의 기적을 만들어내며 화제가 되었다. 또한 2020도쿄올림픽 여자배구 조별예선 일본과의 경기에서 5세트 일본팀의 매치포인트 상황에서 긍정적인 자기충족적 예언이 빛났다. 주장 김연경 선수는 마지막 타임아웃에 선수들에게 ‘포기하지 말자’라며 끝까지 사기를 북돋았고 결국 막판 역전에 성공했다.
‘정신승리’라는 말은 안 좋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좋게 생각하려는 합리화를 비꼬는 말로 사용된다. 하지만 인간이 사실보다는 상황에 대한 의미부여대로 행동한다면 ‘정신승리’는 단순히 합리화에 그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반복적인 긍정적 자기충족적 예언을 통해 정신승리를 현실승리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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