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작가
나는 동생이다.
위로 오빠가 하나 있다.
그 하나뿐인 오빠는
어려서 매우 허약했다.
게다가 선천성 질환을 앓고 있어
평생 짊어질 숙제로
현재까지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자주 아파 몸져누웠던 오빠.
할아버지 할머니는
집안의 장손을 그렇게 놓았다고
엄마를 무던히도 구박했다.
구박데기 엄마가 그려진다.
우리 집에 파출부 같은 엄마.
우리 식구가 아닌 것 같은 엄마.
아파 누워 있는 오빠.
건강하고 잘 먹어서
할아버지께 예쁨 받는 나.
나는 엄마를 구박하는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혼나는 엄마를 빤히 바라보곤 했다.
종종 그런 할아버지를 못 하게 하려고
의미 없는 애교를 피우거나
할아버지 품에 파고들거나 하며
나름 엄마를 보호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크게 효과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 아빠, 할머니는
오빠에게만 관심이 쏠렸다.
오빠가 당장 어떻게 될까 봐
노심초사하는 그 등을
나는 오도카니 바라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지병으로
쇠약해져 가고 계셨다.
그런 엄마에게 다가가
애교를 부려 보았다.
엄마, 나 여기 있다고.
하지만 귀찮은 듯
나를 털어내던 엄마의
그 손길이 너무 아팠다.
그럴수록 엄마 품으로
더더욱 파고들었지만,
엄마는 늘 매정했다.
시간이 지나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다섯 살이다.
나는 그때 죽음을 몰랐다.
천막이 쳐지고,
밤늦게까지 들썩들썩하고,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그 속에 내가 찾는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엉엉 우는 고모들,
침울한 할머니,
손님을 맞이하는 분주한 엄마,
그리고 일을 돕기 위해 모인
동네 아주머니들과 일가친척 어른들...
나는 어려서 음식 욕심이 많아
정말 잘 먹었는데,
그 날의 기억에 음식이 없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나는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않았고,
오빠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내게 할아버지의
죽음을 알려주지도,
고모들이 곡을 하는 이유를
말해 주지도 않았다
(물어봤음에도 불구하고).
생전에 가장 예뻐했던 손녀였고,
가장 따랐던 할아버지의
죽음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그렇게 구석에 방치된
어린아이 일 뿐이었다.
집안의 최고 어른이
가장 예뻐하던 아이는
그렇게 끈 떨어진 뒤웅박처럼
홀로 오도카니 앉아있을 뿐이었다.
가끔 어느 어른이
나를 지칭하듯 말하는 게
들릴 때도 있었다.
"그렇게 예뻐하던 손녀..."
'다들 왔는데, 할아버지는 왜 안 오실까?'
하염없는 기다림이 시작됐다.
그렇게 한동안 나는
할아버지를 찾았다.
가끔 너무 무섭게 혼나서 아플 때 라든지,
모든 관심을 뺏겨서 뒤에 홀로
서있어야 할 때쯤이면
할아버지의 무릎이 그리워지곤 했다.
"엄마, 할아버지는 어디 계셔? 왜 안 와?"
어느 날부터인가 나를 찾아오지 않는
할아버지가 미웠다.
양말을 스스로 빨라며
어린 나를 다그치는 할머니 옆에서
눈물을 꾹꾹 참으며,
오빠에게 대들면 안 된다며
나를 때린 오빠를 두둔하는
엄마와 할머니를 보며,
술에 취해 세간을 때려 부수는
아버지의 공포를 느끼며,
그렇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외로운 어느 날에 오빠가 말했다.
"할아버지는 죽었어."
매정하고도 친절한 오빠의 설명.
내가 모른다는 것을
유일하게 알았던 오빠가 알려주었다.
아무도 할아버지의 죽음을
내가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을 몰랐다.
그 날 이후 갑자기 무서워졌다.
나는 울면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죽지 마!"
나는 자주 울었다.
밤에 잠이 들지 못했고,
자다 깨서 엄마를 찾았다.
나를 애틋하게 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유일하게 내게 사랑을 주는 엄마.
그 엄마가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
할아버지처럼, 내게 말도 없이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
그때마다 나는 이유 없이
운다고 맞았다. 나도 그때는
내가 왜 우는지 몰랐다.
맞으면서도 내가 원망스러웠다.
대체 왜 우는 것인지!
그리고 아빠가 미웠다.
매일같이 살림을 던지고 부수고 깨고,
그도 모자라 엄마를 때리고,
우리에게 사랑의 매라는
허울 좋은 핑계를 포장하여
고문 같은 체벌을 하는 아빠가 너무 미웠다.
아빠가 엄마를
죽게 만들까 봐 무서웠다.
세상 소중한 할아버지가
죽음으로 나를 떠났던 것처럼,
그렇게 소중한 나의 엄마가
불처럼 꺼져 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허공에 헛것을 보았다.
무언가 떠다니는 것 같았다.
먼지같이 작지만 이 빈 공간 안에
가득 들어차 있어서 괴로웠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괜찮지만
혼자 있거나 밤이 될 때면 잘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눌렀다.
온몸이 너무 아픈 가위눌림을 자주 당했다.
하지만 아무리 말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열이 나고, 구토를 하고,
음식을 먹지 못하는 오빠가
눈도 뜨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 공포를 참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도 내게는 관심이 없어'
그래서 아무도 못 본다고 생각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면
어김없이 아빠의 호통과 모진 소리와
귓방망이가 날아왔다.
그러다가 무지막지한
체벌이 되어 돌아오기도 했다.
사는 것이 괴로웠다.
무서운 아빠 눈에 띄면 안 된다는 공포는
늘 나를 숨게 만들었다.
엄마의 사랑이 고팠던 나는
늘 사랑을 갈구하며 다녔다.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과정은
늘 외로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나는 대체 언제부터 병들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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