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
심리학을 전공하고 심리치료를 하다 건강문제로 귀촌했습니다. 작은 도시에서 로스터리 카페를 운영하며 경영에 대한 남다른 접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보아왔던 아버지의 사업운영방식을 바탕으로 온오프라인 카페 매장 및 로스팅 공장 운영 실무를 보고 있으며, 각종 서적과 경영컨설턴트 출신인 남편을 통해 경영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들을 쌓아가고 있는 중입니다.‘막다른 길에서 카페 창업을 말하다’에서는 카페 운영에 대해 경영학적 접근만이 아닌 심리학적 관점을 더한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이 콘텐츠들은 수정 보완 및 더 깊은 내용을 담아 출판 준비 중입니다.
카페인에 입을 못 댄 지 만 1년째.
에스프레소에 설탕 휘휘 저어 홀딱 삼켜버리고 싶은 욕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커피 때문에 단유 해버릴까 매일 고민할 정도다. 카페인 딱 한 잔이면 밤샘 작업도 가능할 것 같은 마음만 부단하다. 늦은 열시면 아이들과 함께 가을 낙엽처럼 침대 위로 부서져 내린다. 눈을 언제 감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이 줄기찬 욕망을 반쯤이나마 잠재워 준 것은 남편이 마련한 디카페인 원두 덕분이다. 늦은 나이, 갑작스러운 임신과 다시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입덧은 함께 찾아왔다. 비스킷과 귤 정도만 먹을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커피라도 입에 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반쯤 나간 정신도 좀 안정될 텐데.
하지만 시중의 디카페인 커피는 맛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남편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때까지 디카페인은 취급하지 않는 것이 룰이었다. 좋은 생두가 없었으니까. 시장에 존재하는 디카페인 커피는 맛있었던 기억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맛이 없으면 잘 팔리지 않고, 잘 팔리지 않는 원두는 오래 보관한 경우가 많으니 담배냄새가 풀풀 나기 일쑤다.
공무원도 백 번 전화하면 다 들어준다. 찌르고 찌르고 쿡쿡 찔러 내 원두만이라도 볶아달라고 남편을 볶아댔다. 그래도 어찌 임신한 와이프에게 맛없는 커피를 줄 수 있겠는가. 생두 업체 다 뒤져 찾고 찾은 생두로 수십 번 샘플링하고 프로파일을 잡아 원두를 내민다.
오호라! 이거지.
그렇게 몇 킬로로 시작한 디카페인 원두가 블루밍 자사몰과 스토어팜에서 매출 1위 상품이 되었다. 이제 원재료는 톤 단위로 들어온다. 불과 몇 개월 동안 일어난 일이다. 남편과 같은 마음을 가진 수 없는 로맨티시스트 남편들이 디카페인 원두를 구매했다. 세상에 로맨티시스트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그 사실에 한 번 더 놀랐다. 임신한 와이프가 1kg짜리 거대한 원두를 끌어안고 세상 행복해하며 부엌으로 달려간단다. 우리가 간절해서 만든 상품이라 타자에게도 간절할 수 있다는 극명한 사실이야 말할 것도 없다.
디카페인 원두를 선물로 보내면 받은 이들이 디카페인인 줄 모르고 연락이 온다. 원두가 너무 맛있다고. 다시 구입할 수 있냐고. 디카페인이라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란다.
커피 내리기조차 귀찮은 날 위해 콜드브루로 만들어둔다. 온라인에선 아직 판매불가.
오늘도 아가를 재워놓고 어둑한 방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아무 때고 훌훌 마실 수 있는 커피를 옆에 두고. 감히 사랑의 묘약이라 칭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향하고, 커피로 위안을 삼으며 지난한 하루를 담는다.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이 시대도 이렇게 이겨나가리라. 이 커피 한 잔의 위안이 원두를 받는 모든 이들에게도 전해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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